건강관리의 어려움


건강관리라는 게 말은 쉬운데 실천은 어렵다.


남들 다 아는 것만 해도 특별한 일 없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데

사람이 평생동안 살면서 고착화된 생활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리가 없다.

어떤 경우는 자기 생명을 갉아먹어가면서 돈을 버는 경우도 있다.


야근, 과로, 밤샘, 무절제한 회식, 음주, 흡연, 운동 안 하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따위의 행동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건강한 몸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타고난 유전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건강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것도 몸에 안 좋은 게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는 건강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살고 싶을 것이다.

꼭 모두 건강하게 살아야할 필요는 없다.

선택의 문제일뿐.


나는 어떤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 할 것인가.




인간은 다면적, 다층적 존재이다.


페미니즘을 추구하고 진보를 이야기하지만 실제 행동은 꼰대스러운 사람도 있다.

정치성향은 완전 새누리인데 더민주를 지지하기도 한다.

새누리를 지지한다고 미친 인간도 아니다. 막상 보면 멀쩡한 사람이 많다.


함부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게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할 때는 말보단 행동을 본다.

말은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 행동은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선택한 것이 행동이다.

그게 그 사람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공부 계획을 짠다고 그것을 다 실천할 수는 없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상이 있지만 이상은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현실이 본질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마저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 경우는 현실을 보고 싶지도 않지만 현실은 더 시궁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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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차이


"취업 안돼 결혼도 포기"..작년 혼인율 역대 '최저'여성 초혼연령 첫 30대 진입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결혼 주 연령층인 20대와 30대의 실업률이 개선되지 못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부모님 세대의 서른과 지금 세대의 서른은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 옛날 서른이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집이 아주 많았음. 반면 지금은 겨우 학교 졸업하고 간신히 취업 하고 숨돌렸거나 각종 시험 준비 중.


요즘 재수나 휴학 감안하면 여자는 25살, 남자는 27살 정도에만 졸업해도 빨라 보인다. 그리고 평균 결혼 연령 보면 취업 후 5년 정도 있다가 결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만 나이 기준으로 하면 대략 27(25)에 취업 후 32(30)에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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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자하는 공부


나는 학교 수업에 흥미가 없어서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일단 꾸역꾸역 듣고 필기는 하는데 복습을 한 적은 거의 없다.


시험기간에도 대충 훑어보는 정도다.

그래서 성적이 그다지 신통치는 않은데 몇 과목은 잘 나온 게 있다.


그 과목들의 공통점은 나 혼자 공부했던 내용이 시험문제로 나왔다는 것이다.

학교 수업과는 전혀 관계없이 나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공부했었는데

그게 우연히 시험문제로 나와서 답안을 작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2. 대학원


나는 공부를 잘 못 한다.

학문에 큰 관심도 없고 별로 하고싶은 것도 없었다.


학교 성적도 당연히 별로다.


그래서 대학원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조금 관심이 가서 알아 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대학원에 가도 내가 원하는 공부는 할 수 없겠다는 거다.


대학원에 간다고 해도 석사과정은 어느 정도 포괄적인 범위의 공부를 해야 이수가 가능하다.


돈도 많이 들고 그 기간동안 돈을 벌지 못 한다는 것도 큰 리스크다.


난 학위가 필요하지도 않고 딱히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금전적인 손해도 막심하다.


결국 나에게 대학원은 아주 잠깐 스쳐가는 존재가 되었다.


#3. 나의 관심


나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한 가지 특정 분야에 몰두하지 못 한다.

그래서 잡다하게 아는 건 많은데 정작 제대로 아는 건 거의 없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걸 확실히 찾았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하나의 분야는 아니고 여러 분야에 걸쳐있기는 하다.


대학교 공부를 통해서 찾은 건 아니고 이것저것 다 해보다보니까 알게 되었다.

대학원에서만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혼자 공부하는 것에 익숙하고 인터넷 강의 혹은 특강 등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학점 따고 수업 들으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보단 나혼자 맘대로 공부하는 게 좋다.


한편 혼자 공부할 때의 단점은 내 멋대로 오독과 오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교정해줄 사람이 없다.

이것은 같이 공부할 사람을 찾아서 해결하고자 한다.


내가 하고자하는 공부는 취미로 삼고 느긋하게 하는 게 내 인생에도 더 나을 것이라 본다.



나는 우석훈은 정당이 아니라 시민단체에 있어야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짜는 경제 정책 자체가 별로 매력적이지가 않다. 시민단체에서 의견 내고 조언 하는 정도의 역할이라면 몰라도 정당에 들어와 국회까지 들어오는 것은 맘에 들지 않는다.


한미 FTA 문제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선악구도로 흘러갔다는 것. 그렇게 단순화 시켜서 싸울 문제가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이고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할 것인지를 논의해야하는데 나쁜놈 매국노 만들어버리니 이성적인 논쟁이 되질 않았다.


난 완전 문과형 인간인데 알파고를 보고 나니까 관심이 가서 요즈음은 과학 공부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의 차이점. 학술은 수 십번 수 백번 퇴고를 하지만 블로그는 대부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작성. 그래서 논리적 완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누구한테 제출할 것도 아니다보니 편하게 쓴다.


의미라는 건 결국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바둑 한 판, 체스 한 판, 축구 1경기, 100미터 달리기. 생각해보면 세상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다들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간다.


점점 언어 표현의 인플레가 심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좋든 싫든 사용하는 어휘가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 나도 가끔 그런 표현들을 쓸 때가 있는데 좀 더 정제된 표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볼꼴 못볼꼴 다 보고 나면 정 떨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적당히 알고 지내는 게 좋은 관계도 많다. 인간에 대한 환멸과 불신은 때론 너무 많은 정보에서 온다.

내가 좋아할 수 있을만큼의 정보만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쩌면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만나고 접하는 모든 사람의 인생을 세세하게 알아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잡음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생각보다 논리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부분을 건드려주는 게 중요하다.



애국과 정의


과도하게 애국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은 애국자와 거리가 멀고,

과도하게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정의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진보언론, 대안언론의 문제점은 자신들만의 정의(justice)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기자들은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그것이 좋게 발현될 때도 있지만 나쁘게 발현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본인들은 그런 걸 잘 모르겠지만.


진보언론 기자들이 안철수를 좋아했던 것은 아직도 이해가 잘 안간다. 2012년은 그렇다 쳐도 최근까지도 그런 경우가 아주 많았다. 지금도 상당수 그렇고. 대체 뭘 기대했던 것일까.


진보언론, 대안언론이 양비론 펼치며 안철수 띄워준 거 생각하면 진짜 열받는다. 그 결과는 야권 폭망에 분열. 혜성처럼 등장한 메시아에 기대한 건 알겠는데 본인들 정체성이랑도 안 맞는 사람이 대체 뭐가 그리도 좋았을까. 정말 이해가 안된다.


이제는 대부분 안철수 포기하고 다시 예전처럼 진보정당 푸시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중인 것 같다. 아직도 포기 못한 분들도 상당수 계시고.


나는 이제 참여연대니 민변이니 하는 단체에 예전만큼의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이 언제나 좋은 일, 올바른 일만 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있는 우리 사회의 수 많은 단체 중 하나일 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진보 지식인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어쩌면 그들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드러나지 않고 우리가 몰랐을 뿐.


사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 공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두가지를 혼동한다. 사적으로 좋은 사람은 대개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다.



'법대로 하자'가 과연 정의를 지킬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나라 노동법을 보면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예외입니다.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 배제되는 주요 노동법 조항

1. 해고의 제한 및 부당해고 구제신청 미적용
2. 근로시간 및 연장・휴일・야간근로 가산수당 미적용
3. 연차 및 생리휴가 미적용
4. 취업규칙 작성의무 미적용
5. 기간제 근로자의 2년 사용제한 미적용
6. 기간제근로자 차별 및 시정신청 미적용


영세한 사업장의 경우 저 모든 것들을 적용하면 사업을 꾸려나가기가 힘들다고 판단하여
노동법에서도 예외를 둔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죠.

실질적으로는 5인 이상 사업장이면서
서류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 원래는 5명이 상시 근로하는 사업장인데
1명은 다른 회사 소속으로 하면

양쪽 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식으로 꼼수를 써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이 경우 부당해고를 당해서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를 해도 이기기가 힘들어요.
법적으로는 5인 미만인 경우가 되니까요.

중앙노동위원회나 법원 가서 승소할 수는 있겠지만 참 고된 길이죠.

법을 지켜야하는 것은 맞지만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법대로 하면 아마 조만간 통과될 걸로 보이는 노동법으로 짤리는 가장들 부지기수죠.

그쵸.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도 '법'이죠. 그 법이 국회에서 통과가 되면 이제 법대로 하는 거고요

이후에는 "법대로 하는데 왜 난리인지 모르겠다. 법대로 하자!" 고 하겠지요.
집시법도 현실에 안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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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확실성의 제도화가 안 되어 있음.
2. 회고적 투표가 없음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 중 하나는
투표를 하기 전에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예측 가능함.


또 회고적(retrospective) 투표라는 것은

선거 직전 사건이 아니라
지난 임기 기간 동안의 직무수행을 종합 평가한 것을 바탕으로 투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 함.


    
1번을 축구에 비유해서 설명 하자면 만약 맨유랑 아스날이랑 경기한다고 할 때 사실 누가 확실히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아스날이 6부리그 팀이랑 하면 아스날이 이기겠죠. 결국 경기 하기 전에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겁니다.


    
2번은 집권 정당이 집권 기간 동안 실시한 정책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에 투표를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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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고

그걸 넘어 정체 현상이 벌어지면


1. 연상연하 커플
2.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나이 많은 커플



이렇게 증가하는 거 같음.


1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2는 젊은 남성들이 또래 여성들과의 취업 경쟁이 심화되고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안정적 자산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됨.

그에 따라 젊은 여성들은 동년배 남성들과의 만남이 어려워지고

한 세대를 건너 뛰어서 만나게 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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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위주의 대화보다는 감정 위주 대화가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다.


경험, 감상.


자기를 노출시킬수록 친밀도가 높아진다.

취향이나 기호를 공유할 수록 심리적 거리가 줄어든다.


친구의 수는 150명이 한계이다.


<거울뉴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따라한다.

감정은 전염된다. 행복은 전염된다.


인간에게는 '공감'이라는 기제가 있다.

내가 행복하면 내 친구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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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출발은 소득보다 소비성향이 높은데서 온다.

소비 성향을 낮추고 광고에 속지 마라.

광고를 보는 시간을 줄여야 행복해 진다.


우리는 미디어의 정보 그 자체에 압도되지 않고,

자신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 중심 잡기


오락의 과소비와 탐닉은 인내력 감소와 현실도피를 습관화 시키고

궁극적으로 '자기 파괴'의 비극을 부른다.


★ 직업으로 자아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자아실현은 사회 밖에서 찾아라.


생계 해결 + 자아 실현 =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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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환경문제>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부작용도 나타났다. 부분별한 개발로 인해 환경파괴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자연을 인류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데서 기인한다. 과학기술은 물론 많은 이점이 있지만 자연과 상생할 수 있는 쪽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자연이 모두 파괴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공멸뿐이다. 


요즘 전 세계는 이러한 의식에 공감하며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교토협약이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빙하가 녹고 많은 섬들이 바다에 잠기고 말았다. 그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이산화탄소가 지목되었다. 그래서 전 세계 각국은 교토에서 모여서 합의를 하게 된다. 이 교토협약에서는 일정 기간까지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합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저탄소 녹색 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이러한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화석에너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화석에너지들은 언젠가 고갈이 될 것이고 우리는 그것들을 대체할 것을 찾아야 한다. 찾지 못 하면 인류의 생존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태양, 바람 등을 이용한 에너지는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또한 고갈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자연 에너지들은 무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발에 따라오는 것에는 쓰레기가 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류는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과잉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그에 따라 공장 폐수부터 시작해서 일반 쓰레기들 까지 우리는 너무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면서 자연을 훼손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쓰레기들을 다시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연구 중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한 바이오가스 등이 있고, 물 정화기술을 발전시켜서 오수들을 최대한 다시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 


이렇듯 인류는 지금까지의 기계적 결정론, 탈 목적론 등의 사고로 자연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파괴를 일삼던 과거를 반성하고,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인간은 분명 과학기술로 많은 업적을 달성했고, 포기할 수 없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제야 사람들이 반성을 하고 공존의 방법을 찾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 하다. 하지만 이제는 무한 발전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자연과 같이 살아가기 위한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연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서 빌려온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자연을 깨끗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2009년 하반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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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전장을 골라서 싸워라."


손자병법에도 나오듯이 전쟁이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다.


내가 못하는 것을 잘 하려고 하지말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 하려고 해라.


대부분의 사람은 제너럴리스트보단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게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

모든 것을 다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메시가 농구선수가 되기를 꿈꾸었다면 그는 절대로 프로 선수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메시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이창호, 이세돌이 바둑이 아니라 축구를 했으면 프로에 도달하는 것은 어림도 없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이 아닌 철학 공부를 했다면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절대 지금의 김연아는 없었다.


물론 공부를 하면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봤을 때 별로 큰 의미있는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본인의 만족감, 사고력 발달이나 학문적 지식은 많이 축적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성공은 없었다.


그녀가 성공한 이유는 자신이 잘 하는 하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잘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잘 하는 것은 절대적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 중에서 상대적으로 제일 뛰어난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하게 되었을 때 얻는 사회적 보상이 크면 클수록 효용가치가 커진다.


공부를 예를 들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5과목이 있는데


자신이 영어를 그 중 제일 잘 하면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영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는 게

제일 효율적이다.


5과목 골고루 2~3등급 받아봐야 아무 의미 없다.(수능 등급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위치를 뜻하는 것)


차라리 영어 100점 받고 영어 교사를 목표로 하는 게 낫다.



자기가 잘하는 것이 꼭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른 경우는 많다.


좋아하지만 못하는 것에 집중하면 성공하기는 힘들다.

좋아하면서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싫어하지만 못하는 것에 집중할 사람은 없다.

싫어하지만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성공할 확률이 조금 있다.


가장 좋은 것은 2번이지만

차선으로 4번의 상황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삼으면 된다.



결론을 정리하면


성공하려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라.

못하는 것을 잘 하려고 해봐야 평범한 사람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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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사랑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든다.


이성적인 판단력은 흐려지고 감성만 강해진다.


그런 사랑의 대상은 여러가지가 있다.


종교 동물 유명인 가족 연인


정도가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때문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은 자신이 믿는 종교가 정말 좋아서 남에게 전도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교에서도 전도 문제가 자주 불거진다.

전철에서도 천국과 지옥을 외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 외에도 강제로 전도하려는 상황은 곳곳에서 존재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원에 개와 함께 산책나온 사람 중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이

끈을 묶지 않고 나오는 것이다.


이들이 하는 말 "우리 애는 안 물어요."


물고 안 물고를 떠나 어떤 사람에게는 공포감이 들 수도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캣맘 논쟁도 종종 벌어진다.



유명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심각한 폐해를 낳기도 한다.


잭스키스 해체 때 벌어졌던 사건들.

동방신기에 대한 테러

아이돌 사생팬들

온라인에서의 언어 폭력과 명예훼손


등 셀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가족이다.


아주 사소하게


식당에서 떠드는 자신의 아이를 방치한다든가 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취업 비리, 기업 불법승계, 탈세 같은 심각한 일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인간의 맹목적인 사랑은 때론 나쁜 길로 빠진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사랑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성보단 감성이 지배하는 영역이고 제어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이기때문에 감성, 본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제어할 수 없다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이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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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특징들을 일반화할 수 있을까?


일단 내가 겪고 느낀 바를 적어본다. 모든 자수성가인들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경험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서 사람 짜증나게 하는 부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1. 나는 했는데 왜 너는 못 하냐?

2. 내가 해봐서 아는데~

3. 열정페이 강요


크게 이 정도가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1. 나는 했는데 왜 너는 못 하냐?


자신은 이렇게 해서 성공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왜 자신을 따라서 하지 않는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얼마나 열심히 죽어라 했는데 왜 니들은 놀면서 일하냐.

내가 피같이 일군 기업에서 왜 니들은 놀면서 돈 받아가려고 하냐.


이런 마인드가 강하다.


2. 내가 해봐서 아는데~


어떤 일이건 자신있게 나선다. 말로는 안 해본 일이 없다.

자기가 잘 모르고 못 하는 분야도 막 나선다.

설사 안 해본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분야에서의 경험을 똑같이 적용하려 한다.

자신의 경험은 어떠 상황에든 적용할 수 있는 마스터키 쯤으로 생각한다.


3. 열정페이 강요


성공하고 싶으면 죽어라 해야되는 거 맞다.

근데 기본적으로 줄 건 다 줘가면서 일을 시켜야 한다.


그것도 안 주려고 하면서


나 때는 이러지 않았어. 나는 월화수목금금금 일했어. 너 돈 받으려고 회사 다니냐?

그땐 돈도 제대로 받지 않고 일했어


등등


이런저런 말들은 다 필요없고, 결국 줄 거 안 준다.


그게 야근수당이건 휴가이건 뭐건간에.


이런 부류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 들어가면 대단히 피곤하다.


본인도 그런 부류인 사람들이야 별 상관 없이 잘 다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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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엄격하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다른 사람의 단점과 잘못은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서 준엄한 판정을 내리지만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에 대한 비판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냥 무시해버린다.


그들이 인정하는 실수라고는


"그때 그 주식을 샀어야 했는데, 그 아파트를 샀어야 했는데." 라거나


"내가 저놈이 뭐가 이쁘다고 조언을 해줬지. 그냥 하지 말걸."


정도일까.



절대


"내 말이 저 사람에게는 상처가 됐겠구나.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 자기는 옳으니까.


내 생각은 다 옳고

내 말은 다 맞으니까.



꼰대들은 자신의 인격이나 인성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정도면 괜찮지 않냐?"


또 자신이 했던 경험은 모든 경우에 다 적용할 수 있는 마스터키 쯤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이 먹는다고 꼰대가 되는 게 아니라

원래 꼰대 기질이 있던 사람들이 꼰대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군대만 가봐도 20대 초반인 애들이 꼰대 기질이 철철 넘치는 애들이 수두룩 하다.


대학에서도 똥군기 잡는 놈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꼰망주들이 꼰대로 성장하는 것이다.



꼰대들은 죽을 때까지 꼰대로 살다가 죽는다. 안 바뀐다.




법무부가 사법시험 폐지 유예를 발표한 이후


전국의 로스쿨생들이 보여준 단결력은 정말 엄청나다.


자퇴할 생각도 없으면서 자퇴서를 제출하고


시위에 동참하고


포털 뉴스 댓글 좌표 찍고 다 몰려가서 여론전 펼치고

트위터 페이스북에서도 여론전 펼치고


조직적이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정말 많이 놀랐다.


사시 쪽이야 다 개인전이라 산발적으로 움직이다보니 화력이 약하고

그냥 별 관련 없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게 더 많다.


로스쿨 측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로스쿨은 교수들도 학생들과 같은 편이다.


로스쿨 생기면서 일자리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선 로스쿨 제도로만 가는 게 당연히 유리하다.



밥그릇이 걸리니까 다들 무섭게 달려든다.



그런데 이게 사실 맞는거다.


자기 밥그릇이 달렸는데 눈 안 뒤집힐 사람이 몇이나 되나?


로스쿨 학생이나 교수 정도면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기득권층이라 불릴만하다.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는 기득권층에 진입할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 밥그릇이 위태로워지니 깽판을 친다.



웃긴건 기득권층도 아닌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 날라가도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다.

노동개악을 한다고 난리를 쳐도 태평하다.


뭔 일이 터져도 조용하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 알아서 챙겨 먹는데말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걸까.

재미있는 세상이다.






*2009년 하반기에 작성한 글


Q. 우리 시대 정치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와 그 대안은?


우리 시대 정치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분단의 과정에서 이념의 차이가 남과 북을 갈라놓았다. 갈라지고 난 뒤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치적으로 대립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남과 북의 대립 뿐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대립은 있었다. 이른바 친북 논란이 그것인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 숙청을 하였다. 정적 제거의 논리로 좌우 이념이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남과 북에도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7.4남북 공동성명,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되면서 남북 화해 분위기는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그 뒤 여러 사건들이 터지면서 남북의 분위기는 다시 냉랭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 내에서도 친북, 빨갱이 논란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고, 최근 보수 단체는 친북 인명사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또 각 정당들은 서로를 몰아붙이며 원색적인 비난을 한다. 각 단체, 언론들도 이념의 차이로 서로를 욕한다.


이렇듯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좌우 대립의 역사였다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은 없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단지 전쟁, 싸움이지 정치가 아니다. 

좌파든 우파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주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를 헐뜯고 욕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결국 이념에 얽매여서 싸운 끝에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상을 보지 않았는가? 물론 생각의 차이가 있기에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싸움이라는 것은 합의점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지 싸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검투사라도 되는 듯이 행동한다. 그리고 그게 정치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주장하며 ‘내 말은 맞지만 넌 틀려’식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 말에는 ‘다르다’와 ‘틀리다’가 엄연히 구별되어 있다. ‘당신의 생각은 나와 다르지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결국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 그 시작은 남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와 다른 상대편의 입장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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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를 보다가 '미국은 유럽을 동경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우리가 보는 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사실은 유럽의 이야기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영화에선 당연하게 영어를 사용한다.


영국 이야기는 그렇다치고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작품들도 등장인물들이 전부 영어로 말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부 다른 나라 이야기인데 영어로 말하고 있구나.


아래는 고전 영화 <엘 시드>를 보다가 느낀 점을 적은 것이다.


 이 영화는 스페인의 영웅이 주인공이지만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엘 시드』를 비롯한 유명한 역사 영화 대부분이 미국에서 제작되는 것을 보면 느끼는 게 있다. 


우리나라나 중국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굳이 다른 나라의 영웅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소재 자체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미국 역사 영화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정도를 다루고, 옛날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독립전쟁 시기를 다룬 맬 깁슨 주연의 ‘패트리어트’ 정도가 있다. 


이런 소재의 빈곤 때문에 미국은 유럽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 

이처럼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는 역사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인도나 중국을 보고 역사가 길다고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유럽계 이민자들이 사회 주축이었기 때문에 문화 종주국격인 유럽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디세이아도 영문학 시간에 배우는 것도 좀 이상한 거 같다.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문학인데 말이다.


그리스가 서양 문명의 발상지니까 상관 없는 건가?


그만큼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면 미국은 고사하고 영국도 없던 시절이니까.


이런 점들을 보면 미국은 유럽을 동경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어느 정도 답할 수 있는 것 같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막장 드라마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작가나 감독의 능력 부족 일수도 있고,

과도한 분량 늘리기로 인한 폐해일수도 있다. 혹은 제작사의 자극적 소재 요구이거나.


그 외에 그런 드라마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럼 이들은 왜 이런 장르를 선호하는 걸까?


처음에는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왜 저런 수준 낮은 드라마를 보는 걸까.


하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다.


밖에서 머리 아픈 일들을 많이 겪고 나면 그저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어차피 머리 쓰는 일은 회사나 학교 혹은 다른 어딘가에서든 하고 온다.


굳이 집에서까지 머리 아픈 드라마를 보고 싶진 않다.


단순하게 치고박는 싸움, 다 때려부수는 영화같은 게 땡긴다.


아무 생각없이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 하나의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논의점도 있다. 


'막장'의 정의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소재가 막장이면 다 막장일까?

불륜, 폭력, 출생의 비밀이 나오면 다 막장일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은 시동생과 형수의 불륜극이며 남편이자 형을 죽이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죽은 왕의 아들이 그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서도 출생의 비밀이 나온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도 결국 따지고보면 불륜 이야기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를 들 수가 있다.

소재 자체로 그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막장인가?


개연성이 부족하다.


막장 드라마의 대부분은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극을 이끌어가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극중 등장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야기가 왜 이렇게 전개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많다.


대본이 실시간으로 나오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때그때 제작사의 의견 혹은 시청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본을 쓰기도 한다.


이러니 극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전혀 생뚱맞은 전개가 나오니 시청자들이 납득하질 못 한다.


대표적인 게 <아내의 유혹>이다.

이 드라마는 점 하나 찍었다고 다른 사람 되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 외에도 막장의 대가 임성한 작품들을 보면 진짜 황당한 내용들이 아주 많다.

이게 뭔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되는대로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흔하고 식상한, 혹은 나쁜(?) 소재라도 잘 쓰면 된다.

그 잘 쓰는 게 어려워서 문제지.


결론은 막장은 소재만으로 막장이라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소재가 극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책읽기와 글쓰기 능력의 관계


일반적으로는 책을 많이 읽으면 글도 잘 쓸 확률이 높다.

다독을 통해 어휘력이 올라가니까 같은 의미라도 다양한 단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영어에서는 특히 paraphrasing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

한국어도 다르지 않다.

같은 말만 계속 쓰는 글과 다양한 어휘를 쓰는 글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어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토지'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게 좋다고 한다.

토지는 5부 16권의 대하소설이니 이것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독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책을 정말 많이 읽는데도 글을 잘 못 쓰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첫째, 나쁜 책을 많이 읽는다.


수준 낮은 책은 아무리 읽어봐야 도움 되지 않는다.

그런 책을 읽는 것은 단순 눈 운동에 불과하다.



둘째, 책을 읽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읽었으면 생각을 하고 글을 써봐야 한다.

하지만 그저 책을 읽었다는 만족감이 좋아서 계속 읽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없이 읽기만 하면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다.



생각 없이 나쁜 책을 많이 읽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수능 언어 점수 정도일 것이다.


읽고 정해진 답을 찾는 것까진 어떻게 될지 몰라도

좋은 글이 나오긴 힘들다.



좋은 책들을 생각하며 읽는 것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첫번 째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글로 남길 때 글쓰기 실력이 좋아진다.


또한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1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된 책을 읽는 것이 인생에도 더 도움이 된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러나 책은 나이 먹을 수록 점점 멀어진다.

예전보다 아는 게 많아졌고 즐길 게 많아졌기 때문일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경구가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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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또 다른 생각


(이 글에서 말하는 성공은 금전적 성공을 뜻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인생은 등가교환.


성공을 원하면 어릴때부터 한 분야에 매진해야 한다. 

그것이 공부든 운동이든 예체능이든 어렸을 때 이미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스무 살 이후에 무언가를 시작해서 성공하는 것은 훨씬 확률이 떨어지는 게임이다. 

애초에 예체능은 불가능하고 공부도 절대 못 따라 잡는다.


고시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그 시험에 대한 지식 평가 뿐만이 아니라


20년 이상 살아오면서 축적된 공부 습관이 중요하다.

습관과 더불어 독해력이나 배경지식도 무시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해왔던 사람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럼 스무 살 이후에 성공하는 연예인들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들도 이미 능력이나 외모가 갖춰진 상태에서 기회만 잡았을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거의 불가능 하다.

키가 187cm인 사람과 167cm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분야에서 승부를 봐야하는데

사업, 주식, 부동산 투자 따위의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자본이 받쳐주어야 하는 것이다. 없는 놈은 엄청나게 불리하게 시작한다.


그래도 이것은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인다.


이것들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오히려 자본이 중요한 싸움이고

가지고 있는 자본이 고만고만하다면 노력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중에서도 사업과 주식은 재능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고

부동산이 제일 능력과 연관성은 떨어지는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역사가 증명한다.


정말 평범한 능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평균 수익률 자체는 주식이 부동산보다 역사적으로 높았지만

그 수익률을 향유한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부동산은 평균 수익률을 따라가는 투자자가 주식보다 훨씬 많았다.


그 이유는 주식은 사놓고 기다릴 수 없게끔 구조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식의 가격은 매일매일 변동하고 그것을 투자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비범한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동산은 객관적인 가격이라는 게 없다.

단순히 추상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가격 변동도 느낄 수 없다.


부동산은 그냥 묻어두고 계속 살 수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도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성공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해서 부동산까지 왔는데


결론을 내면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이미 어렸을 때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스무 살 정도면 이미 어느 정도 결판이 났다고 보면 된다.


스무 살 이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성취 중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업, 주식, 부동산인데


이것은 자본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사업과 주식은 상대적으로 재능이 더 중요하고 부동산은 덜 중요하다.


자신이 자본도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다면 부동산이 그나마 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제 그 길도 점점 막혀간다.

이미 부동산의 수익률은 점점 하락하는 추세고

초기 진입 자본이 너무나 많이 필요하다.


초기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는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노동 임금 상승률은 대단히 낮다.


이것은 초기 자본에 도달하기까지의 기간이 예전보다 길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성이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가 성장할 때가 개인에게도 더 기회가 많다.

성장성이 떨어지면 평범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은 낮아진다.

성공의 TO는 한정되어 있으니 특출난 사람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점점 우리의 삶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삶을 사는 게 힘들어 진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이 맞는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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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과 냉대의 차이?


둘은 다르다.


대부분 남에게 무관심하지만 냉대하지는 않는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살지말자 다짐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고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다른 사람들이 봐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할지라도


냉대하지는 말자.


어차피 힘든 세상인데

조금이라도 밝은 모습으로 사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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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에 쓴 글이랑 같은 내용이다.


본질에 집착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본질보단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피셋이랑 사무관이랑 무슨 상관이냐. 이거 다 행정학과 놈들이 만든거다. 쓰레기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래봐야 현실은 피셋 잘 봐야 사무관 된다.  아무리 그런 거 따져봐야 남는 거 없고 인생에 도움 안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록 장수할 확률만 높아진다.

그게 싫으면 혁명을 일으키든지 산에 들어가든지 해야 한다.


결국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선

본질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하라는 걸 잘 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을 먼저 충족시킨 이후에 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안정감을 가지고 다른 걸 하는 것과


아무 기반없이 하는 것은 차이가 난다.


당신이 혁명가가 아니라면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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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사실 생각해보면 굉장히 간단한 질문인 것 같다.


세상이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냥 하면 안 되고 잘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흔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들을 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수능


수능이라고 하면 뭔가 사교육이나 교육의 불평등, 획일화, 서열화, 죽은 교육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많이 떠오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첫걸음은 수능을 잘 보는 것이다.

어떻게 공부하든 어찌됐든 그냥 수능 잘 보는 게 중요하다.

요즘은 수시가 더 중요해져서 중요성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수시를 생각해봐도 입학사정관 전형. 

혹자는 불공정한 전형이라고도 이야기하지만 어쨌든 잘 보고 좋은 대학 가면 된다.



취업도 똑같다.


취업 잘 하려면


소위 말하는 '스펙'을 잘 쌓아야 한다.


학벌, 학점, 영어, 기타 등등


스펙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 대세지만 결국 기업은 스펙을 보고 선발한다.

아무리 스펙 타파 외쳐도 한계가 있다.



각종 전문직, 공무원 시험도 비슷하다.


평생 써먹일 일 없는 지식들을 시험에 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문제를 내는 이유는 전문성이나 어떤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 아니고

걸러내려는 목적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사내 정치도 있다.


사내 정치는 누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그걸 잘 하는 사람이 위로 올라간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



이밖에도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내 생각에 관심 없다.

세상은 그저 누군가가 그 일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둘 뿐이다.



연애나 결혼도 비슷하다.


누구나 마음, 내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게 외적인 면을 아예 안 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외적인 면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내면을 모두 알아보고 사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 정도로 충분한 교감이 형성되려면 상당기간 같은 장소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한다.


소개팅은 외적인 면으로 판단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소개팅에 나온 남녀는 서로를 순식간에 스캔하며 파악하려 한다.

얼굴, 키, 몸매, 비율, 헤어스타일, 패션 등의 외모적 측면,

학벌, 직장, 재력 같은 부분,

그 외에도 취미나 대화가 통하는지의 여부 따위를 단 몇 시간 안에 다 판단한다.


현재 사귀고 있는 사람들도 상대방에 대해 다 알지 못 하는 게 많은데

이제 겨우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알 수 있을까?


자신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렇지만 확률에 기대는 것이다.

대충 이 정도면 파악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자신이 틀렸을지라도 크게 상관은 없다.

어차피 몇 번 더 만나다 그만 만나도 되고

혹시 좋은 사람을 놓쳤다해도 다른 사람을 또 만나면 되기 때문이다.


소개팅이나 헌팅, 혹은 선 자리에서는 외적 요소가 훨씬 중요하고 

이것을 부정하면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데이트에서도 남녀 중 누가 더 돈을 쓸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다.

한국에서는 보통 남자가 더 많이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자가 내려고 하면 오히려 못 내게 하는 남자들도 아주 많다.


한편 최근 10년 정도 인터넷에서의 여론을 보면 

더치페이 하기를 원하는 남자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남자가 돈 더 내야 원하는 여자를 만날 수 있다.

먼저 구애를 하는 쪽은 대개 남성이고

여성들 입장에서는 

당신과 모든 게 다 똑같은데 돈 더 많이 내는 남자가 널려 있으므로 굳이 당신을 만날 필요가 없다.


애초에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결국 진학이든 취업이든 연애든 


세상이 원하는 것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게 싫으면


속세를 떠나든가

판을 뒤엎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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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과 송곳의 차이


2014년 하반기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 '미생'


그리고 지금 방영 중인 '송곳'


두 작품은 모두 웹툰이 원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독자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는 점도 같다.


그렇다면 미생이 성공했던 것처럼 송곳도 성공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송곳은 절대 미생만큼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생과 송곳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생은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결국은 체제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지점을 건드리지 않았다.


단순히 장그래라는 한 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장그래의 좌충우돌 성장기랄까.

장그래가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멘토들의 도움도 받고 자신도 열심히 노력하여 많은 발전을 이뤄낸다.

대부분의 내용은 어떻게보면 처세술과 상당부분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기업의 임원들이 이 드라마도 보고 만화 단행본도 구입하여 회사 직원들에게 선물도 했다고 한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장그래라는 비정규직 사원에 대한 감정이입은 아주 자연스럽다.

장그래는 비정규직 신분에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해 간다.

시청자는 그를 보며 응원하고 비정규직의 안타까움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비정규직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으니 그럼 제도를 개혁합시다....라고 말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어떤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레드 컴플렉스랄까.


이것은 마치 기부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기부하지 않아도 되도록 사회를 개혁하자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욕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언가 노동자, 노동이라는 표현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노동자=하층민 or 공장 or 막노동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란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근로자'는 '노동자'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근로자는 사람들이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참 재밌는 현상이다.


이처럼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언가 좌파적이고 빨갱이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송곳'은 바로 이 '노동'에 대한 문제를 제목처럼 송곳같이 파고든다.

작가는 돌아가는 법 없이 정공법으로 찔러댄다.


주인공 이수인의 군대 에피소드라든지, 구고신의 명대사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불편할 것이다.


감정이입의 관점에서도 미생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미생은 주인공 장그래에 사람들이 감정이입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송곳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이수인? 네가 옳은 건 알겠지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말할 수 있다.

장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응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송곳에는 그런 캐릭터가 없다.


결국 송곳은 계속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드라마라 과연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 궁금하다.

드라마를 잘 만들면 그 자체로 인기를 끌 순 있겠지만 

어쨌든 '미생'만큼의 인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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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대한 단상


누군가 그랬다.


SNS는 자기 행복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등은 이런 일반적인 SNS의 룰을 따른다.


하지만 모든 SNS가 그렇진 않다.


요즘 많이 쓰는 SNS 중에서 트위터는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은 잘 모르겠는데


(연예인이나 팬 관련 트윗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트위터는 부정적인 내용이 더 주목을 받는 거 같다.


그리고 그런 트윗을 할 때 최대한 쿨해야 한다.

원색적인 표현보단 어떻게든 쿨한 말투를 유지해야 하고

욕을 양념으로 넣어야 한다.


그리고 소위 요즘 새로 생겨난 '프로 불편러'라는 용어가 참 적절한 사람들이 많다.

별 일도 아닌 것을 과격하게 이야기해서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


Negative가 트위터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공감이 가는 것들도 있지만 왜 이러나 싶은 것들도 많다.


그래서 트위터는 최대한 뉴스나 정보 위주로만 보게 된다.


딱히 사실이라고 할 수도 없는

어떤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이 

단순히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고 해서 꼭 옳은 것은 아니다.


트위터는 글자수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주장을 펼치기도 어렵다.


적절히 걸러 들어야 한다.


 






요즘 세상 대부분의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거역하려 해도 거역할 수 없는 그런 거랄까.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와 환경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여기서 유전자라는 것은 꼭 부모가 뛰어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범한 부모 밑에서도 천재적인 유전자가 나올 수 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부모의 뛰어남과 관계없이


자신이 태어날 때 가진 유전자가 중요하다.


어떤 분야의 재능이든 뛰어난 것을 타고난 사람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유리한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게 신체적 조건이 될 수도 있고, 정신적, 두뇌적 조건일 수도 있다.


키가 190cm나 2미터 정도 되려면 아무리 발악해도 소용 없다.

그냥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잘 먹고 잘 관리 받아서 원래의 키보다 몇 센티미터 정도는 더 클 수 있지만

유의미한 차이를 내기는 어렵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관리 받으면 어느 정도 커버는 되겠지만

본판은 변하지 않는다.

본판을 바꾸려면 성형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얼굴은 차라리 나은 거다. 성형이라는 방법이 있으니까.


공부도 노력가지고 안 된다.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수준은 사회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정도까지 도달하긴 어렵다.

유전자가 받쳐주어야 한다.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생각해보면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다.


노력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끈질기게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결국 집중력을 가지고 엄청난 시간을 쏟아붓는 것이다.


공부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시험 점수 잘 받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이다.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다.


평범한 사람은 집중 못 한다. 다들 해봐서 안다.


예체능은 이런 말 안해도 다 인정한다.

재능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유전자 못지 않게 환경도 중요하다.


부모의 재산 수준, 학력, 가풍, 인격 등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은

우리들의 인생을 상당부분 결정짓는다.


뛰어넘어 보려해도 수 많은 장벽이 우리를 가로 막는다.


연애나 결혼도 결국 끼리끼리 하는게 대부분이다.


요즘 '금수저'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점점 계급이 고착화되고 세습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바꿀 수 있고 능동적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이미 대부분 정해져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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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와 별로 관계 없는 사람들의 소식을 너무 많이 듣고 산다.


예전에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의 소식만 전해 들었는데 

미디어의 발달로 그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우리가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는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TV에서 보고 각종 인쇄매체에서 보고 인터넷에서도 본다.

그나마 예전에는 PC로만 접하다가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정말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가 되었다.


접하는 형태도 동영상이나 사진이 늘어나며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오히려 아파트 옆집에 사는 사람보다

평생 만날 일 없는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나같은 경우는 유럽축구를 좋아하는데


한국의 선수들보다 유럽의 선수들이 더 익숙한 경우도 많다.


요새는 요리사나 기자, 변호사, 의사 등 각종 전문직들도 연예인화가 진행되어

사람들에게 친숙한 유명인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생활은 대중의 관심거리가 되어 소비된다.


이런 유명인사들의 사생활은 실시간으로 전송되어 순식간에 퍼진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소식도 SNS 등을 통해 더 많이 접한다.

예전같으면 연락도 없었을 그저그런 사이들도

온라인 친구 맺기를 통해 끝없이 이어진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그들의 소식이 뉴스피드에 뜨고 

또 내 소식도 그들의 뉴스피드에 등장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올린다.


이처럼 우리들 자신의 인생과 그다지 관련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소식을

우리는 매일같이 접하며 살아 간다.



정말 피곤한 일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꾸역꾸역 뇌에 집어넣는 일은 굉장한 정신력 소모다.

어느정도 조절하지 않으면 언젠가 과부하가 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신경쓰는 것을 줄이고

내 인생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좋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이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보다 더 윤택한 인생을 만드는 길이다.


 



미디어의 범람과 외모의 중요성


2015년 현재 우리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30~4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외모에 대한 집착이 더 커져갔다.


조선시대야 미디어라고 할만한 게 없던 시절이고

개화기나 돼서야 신문이 생겼다.


1970년대에는 흑백TV도 제대로 없는 집이 많았다.

옹기종기 모여서 온 동네 사람들이 TV를 보던 시절이다.


예전에는 이처럼 미디어를 접할 기회가 적다보니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한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다.

동네라고 해봐야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고

남자든 여자든 꾸미는 일은 별로 없었다.


외모가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주로 접하던 미디어는 어쩌다 보는 TV(그나마 흑백 위주)와 스포츠 신문 정도일 것이다.


이게 80년대를 넘어서며 컬러TV가 보급되고 87년 민주화 이후 연예계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인다.

댄스 가수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90년대 초 대중문화의 대폭발이 일어나고 그 이후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들이다.


소프트웨어적 측면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적 측면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많은 매체들이 등장했고 90년대 컴퓨터의 보급으로 점차 우리는 미디어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그것은 한 차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2000년대 초 다음카페 등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의 등장과 캠 문화의 발달은 

셀카(selfie) 문화를 확산시켰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도 결정적이었다.


특히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싸이월드이다.

미니홈피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온 싸이월드는 그야말로 대단한 변화를 몰고 왔다.

싸이월드 이용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경쟁적으로 올리기 시작했고

또래 집단 사이에서는 그것을 공유했다.


이제 친구들 사이에 외모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미니홈피는 방문자수, 방명록, 댓글 등으로 수치화 돼서 나타나기 때문에 

외모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방문자 수도 많고 공식 홈페이지에도 등재되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싸이월드 이후에도 각종 SNS가 등장했지만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기본 컨셉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을 극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현재는 인스타그램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글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사진만으로 말한다.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등의 모바일 메신저, SNS 등에서도 자신의 사진은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할 때 결혼사진을 찍는다.

해가 갈수록 점점 연예인 화보촬영 하는 방식을 따라간다.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가 연예인들을 접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늘어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점점 자신들의 사진을 서로 공유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모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우리의 일상 어디에서나 외모가 평가받고 있다.


전국민의 연예인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매체의 발달이 불러온 사회현상이라고 해야할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알 수 있다.

예전처럼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외모를 사진으로 보고 있다. 



미디어의 범람 속에 우리는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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