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 비평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건 사실 간단하게 끄적일만한 주제는 아닌데 한 번 써본다.


우리는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지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


재미있는 사례가 몇 가지 있다.

다음은 수능에 출제된 시의 작가가 직접 문제를 풀고 남긴 소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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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55·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사진) 시인이 “내가 쓴 시가 나온 대입 문제를 풀어 봤는데 작가인 내가 모두 틀렸다”고 18일 말했다. 그가 풀어 본 문제는 2004년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였다. 최씨의 작품 ‘북어’ ‘아마존 수족관’ ‘대설주의보’ 등은 수능 모의고사 등에 단골로 출제돼 왔다. 그는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라며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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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이야기는 종종 있어왔다.


수능에 출제된 언어영역 문제를 저자가 직접 풀었는데 틀렸다더라....하는 얘기들.


수능은 객관식 시험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해석을 요구한다. 그렇기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혹자는 출제자의 의도가 중요하지 작가의 의도를 묻는 게 아니라고도 한다.

꼭 수능이 틀렸다곤 할 수 없겠지만 사고의 폭을 좁히기를 강요한다는 생각은 든다.


다음은 히치콕의 사례



흥미로운 일이다.


다음은 일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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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딸이 학교에서 받은 과제 중에서 "'반딧불의 묘' 작가의 당시 심경에 대해서 제출하라." 라는 내용이 있어서 그걸 아버지에게 묻자, 아키유키는 "음, 마감에 치여서 필사적이었다."라고 말했는데 그걸 그대로 제출한 딸이 낙제점을 받았다라는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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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들었을 때도 이런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다.

작가의 의도와 비평가들이 생각하는 게 달랐다는 거.


하지만 이런 사례들이 비평가들의 역할을 폄하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비평은 비평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누구나 다를 수 있고 꼭 정해진 것은 아니다.


비평가가 자신의 비평만이 진리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건 잘못됐다고 말한다면 그건 문제다.

또 권위있는 비평가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무시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결국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예술 작품이 수학공식처럼 답이 딱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마치 그런 게 있다는 듯이 얘기하는 건 안 된다.


예술작품에 대해 비평하는 비평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우미 역할을 해야 한다.

난 그게 비평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좋고 싫음을 표현한다.


좋고 싫음에 대한 표현은 자신을 나타내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그런 부분들에서 드러난다.


그 대상은 연예인일 수도 있고 정치인이나 운동선수 또는 기타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다.
꼭 사람 뿐만이 아니다.

게임이나 책, 혹은 스포츠 클럽도 가능하다. 


우리는 그런 대상들에 대한 호불호를 밝힘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리고 좋아하는 게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이야기가 잘 통하여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좋아하는 것이 극명하게 갈릴 경우에는 오히려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당에 대한 호불호이다.

내가 특정 정당을 좋아한다고 하거나 싫어한다고 할 때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만약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상당히 껄끄러운 대화가 이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생각을 밝히기를 주저하기도 한다.


굳이 내가 밝혔을 때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내 생각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응하다보면 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단순 사무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해봐야

학생이면 학교 얘기 직장인이면 일 얘기, 그외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얘기 정도.


술 자리 정도 가면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자신의 속 얘기를 털어놓는 것은 훗날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친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친해진 뒤에도 친한 정도에 따라 이야기의 완급조절을 한다.

이 사람이랑은 어느 선까지 얘기해도 되겠구나 하는 게 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이 사람과의 친밀도는 변함없다고 생각하면 

내 속에 있는 깊은 얘기를 꺼리낌 없이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머리 속으로 생각하든 하지 않든 무의식적으로 이야기의 선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다.


 



평범한 인생과 비범한 인생은 어느 쪽이 더 나은 걸까?


비범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평범하지 않다는 뜻이고 일반적으로 '뛰어남'을 말한다.
당연히 될 수 있다면 뛰어난 인생이 되는 게 좋겠지.


하지만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게 우리 인생을 고달프게 만드는 원인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에 따라 결정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슬프다.


그런데 평범한 인생이라는 건 무엇일까?

대체 어떻게 살면 평범하고 보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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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중산층~서민 사이에 걸쳐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인 평균키에 눈에 띄진 않는 그저 그런 외모.

그리고 적당한 운동신경과 두뇌를 가지고 평범한 초중고등학교를 나온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수도권~인서울에 걸친 수준의 성적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간다.


남자라면 평범하게 대학 1년 다니고 군대 갔다오고

여자라면 1년 정도 휴학하고 24~25살쯤 졸업 후 적당한 중견기업~중소기업 구간의 기업 입사.

혹은 9급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공공기관에 입사.


그리고 남자는 30 초중반, 여자는 20후반~30초반에 결혼.

집은 1억 정도 하는 수도권 끝자락 10평대 아파트 전세나 빌라 전세.


자녀는 둘은 힘들고 1명만 낳아 기른다.


애도 있고 해서 차가 필요해서 사면 차는 아반떼급.


가끔 외식하고 

1년에 한 번 가까운 외국여행이나 다니려 했으나 애 생기고나선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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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내가 대충 생각해본 평범한 인생이다.

큰 틀에서 보면 대부분 이와 비슷한 삶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요새는 이렇게 사는 것도 버거워보인다.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청춘들도 많고

취업 준비와 알바에 치여 연애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


연애는 해도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다니는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삶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평범하게만 살고 싶은데 그것조차 힘든 세상이다.


과연 나는 평범해질 수 있을까?


 



인생과 행운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흔히 운이 있네 없네 하는 말들을 한다.


보통은 중요한 순간에는 운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은 운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버스 환승이 바로 이루어진다든가

쪽지시험을 보는데 내가 시험 직전에 봤던 게 나왔다든가 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들은 운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수능 시험을 봤는데 찍은 게 다 틀렸거나

전재산을 주식에 투자했는데 실패하거나 하는 경우들.


딱 한 번만 운수대통하면 좋을 거 같은데 같은데 하지만

결국 그런 일은 생기지 않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그런 결과가 모여서 우리 인생을 이룬다.


왜 그런 걸까?


이것은 우리가 잘 안된 것만 기억하는 확증편향때문인걸까?


한 번 생각해보자.


기본적으로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또한 5지선다 기준 1문제당 찍어서 정답을 맞힐 확률은 20%다.


1문제는 찍어서 맞는다쳐도 연속해서 여러문제가 맞을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2문제는 25분의 1, 겨우 4%의 확률이다.

3문제는 125분의 1, 0.8%다.


우리가 문제를 3문제를 찍어서 그 3문제가 다 맞을 확률은 0.8%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게 아주 당연한 일이다.


주식투자를 살펴보자.


주식은 오르고 내리는 것밖에 없으므로 언뜻 보면 50%의 확률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계속 사고파는 거래를 한다면 2분의 1씩 계속 곱해주어야 한다.

그때마다 맞힐 확률은 낮아진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주식에서 장기적인 기간 동안 수익를 내는 개인투자자는 약 5%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5% 안에 든다는 보장은 없다. 드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다.


연애나 결혼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만난다.

외모, 학력, 집안, 재산 등 종합적으로 따졌을 때 비슷한 수준과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외모가 부족하면 돈이 많든가, 돈이 없으면 외모가 출중하든가.


내가 돈도 없고 학력도 달리고 집안도 형편없고 외모마저 평범 이하인데

갑자기 미스코리아나 연예인을 만날 수는 없다. 그런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

엄청난 운이 따르지 않는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분의 1이다. 몇 퍼센트인지는 계산하고 싶지도 않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부자는 굉장히 소수이다.

내가 그 안에 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상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우리가 흔히 운이 따른다 안 따른다고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확률의 문제다.

확률적으로 그런 사건이 발생할 백분율이 얼마인가가 중요하다.


중요한 일이라는 건 결국 확률적으로 낮은 백분율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면 발생할 확률이 낮은 일들은 대개 중요한 것일까?)


우리가 일어나길 바라는 일들은 대개 확률이 낮고

그렇기때문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확률의 문제이다.





해가 갈수록 점점 그런 생각이 든다.


아파트 숲에서 사는 우리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고

내가 사는 동네보단 번화가로 우르르 모였다가 다 뿔뿔이 흩어진다.


대학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꼈다.


대학은 뭔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편하면서도 불편한,


그런 미묘한 감정이 드는 공간이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그냥 지내다보면 문득 그런 감정을 느낀다.


대학은 나에게 굉장히 친숙하지만 때론 낯선 곳이기도 했다.


강의실이라는 공간에서


전공 수업을 듣는 학생들.


사실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전공이 다를 수도 있고

같은 전공이라도 휴학이니 뭐니 해서 엇갈릴 수 있고, 

같은 과목이라해도 여러 분반이 있을 수도 있다.


한 학기 동안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어찌보면 참 대단한 인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업에서는


내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무슨 과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서로 관심도 없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로 한 학기가 지나고 나면 모든 게 다 잊혀진다.


마치 처음부터 만난 적 없었던 것처럼.


조별과제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별과제를 한다고 해도 확실히 별로 친해지는 일은 잘 없다.

대부분은 굉장히 사무적인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


분위기 메이커가 한 명만 있어도 급 친해지고 편해지긴 하지만

그런 사람 없으면 그냥 서로 사무적으로 하다가 끝난다. 

그리고 학기 끝나면 역시 서로 모르던 사이로 돌아간다.


조별과제 때 친했던 경우도 종국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

딱 그때 뿐이지 학기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결과는 똑같다.


원래 다 이런거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씁쓸한 기분도 든다.


내가 전철을 탈 때 같이 탔던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지금까지 디뎌온 공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이 황량한 도시에서 내가 마음 편히 있을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마음의 안식처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찾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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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요즘 드는 생각이


좌파와 우파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이 둘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은 아마 '공감'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다.


좌파는 휴머니즘(Humanism)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도 같이 느끼고 함께 이겨나가자는 게 좌파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항상 나오는게 '연대'다. 문제해결을 혼자 하지 말고 같이 하자고 주장한다.


우파는 문제의 해결을 주로 개인에게 돌린다. 

문제는 각자 개인에게 달린 것이지 사회나 구조에 매달릴 게 아니라고 말한다.


등록금이 비싸다는 문제에 대해서도 둘의 의견은 엇갈린다.


좌파는 시위 등의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우파는 장학금 받으면 되지 왜 등록금을 낮춰야되냐고 말한다.

장학금을 못 받은 건 공부를 열심히 안 한 네 탓인데 왜 떼를 쓰냐는 식이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는데 왜 공부할 생각은 않고 시위를 하냐는거다.


사회 불평등에 대한 시선도 비슷하다.


좌파는 구조적 문제가 먼저 해결된 다음에 개인의 노력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 보지만


우파는 니가 성공하지 못하고 돈이 없는 건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 말한다.

사람이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매사에 불평불만만 해서는 나아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민 문제에 대한 논쟁도 같은 맥락이다.


"정말 힘들다. 이민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저 수사에 불과한 표현이지

정말로 떠나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민 가서 사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싫으면 떠나라. 아프리카같은 데나 가라.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데 니가 뭔데 욕을 하냐.

아주 배가 불렀구나." 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머리에 깔려있는 생각은 현재 대한민국 구조는 정상인데 네가 부적응자라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라는 게 내포되어 있는 듯 하다. 


결국 언제나 '노력'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요새 인터넷 상에서 비꼬는 식으로는


노오오오오력, 노력충 등의 표현이 있다.


사실 어느 쪽 주장도 완전히 맞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도 맞고 

개인의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우리는 이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생각을 펼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좌파든 우파든 좀 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냥 드는 생각들>


애초에 인생은 불공평하다.


그게 사실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자명한 사실.


인간은 각자 자기만의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생에서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들은 대부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 어른이 되는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쉽고 별로 의미 없는 일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인정 받고 싶다면


대중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해야 한다.


자기만의 것을 추구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꼭 사회적인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정의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대체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가.



참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요새 참 공감하는 말이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


어차피 영원하고 지속적인 것은 힘들다.


기회가 왔을 때 치고 빠지는 것이 중요하다.






2015/08/28 - [기타] - 인간은 모순으로 가득 찬 존재인가?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일들을 겪는다.


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여기에서 재밌는 건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다."


라는 식의 태도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XXX 보는 사람 이해가 안 됨.------- 이라는 사람보고 꼰대라고 해놓고는


정작 자기도 똑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정말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나도 솔직히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 하지만 이런 행태를 보였을 수도 있다.


남이 지적하기 전까지 자기를 똑바로 보기는 힘든 법이니까 말이다.



한편 또 다른 재밌는 사례는



정치적으로는 좌파적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경제적 성공을 갈구하는 사람도 많다.


흔히 얘기하는 강남좌파가 그런 것이다.

혹은 강남좌파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


그러나 생각해보면 좌파라는 것도 한 가지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좌파라는 게 꼭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좌파는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집합이다.

좌파 안에서도 생각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또한,


인간이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때 딱 1가지 기준만으로 모든 것을 정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현재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얼마든지 모순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어쩌면 인간의 당연한 속성이 아닐까 싶다.


 





수학 교과과정에서 미적분 내용을 제외하는 문제에 대한 고찰


* 이 글의 교과과정은 문과 수학을 전제로 함.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평생 살면서 미적분 쓸 일이 얼마나 되냐? "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삭제 반대자의 경우 반응이 크게 두 개로 나뉜다.


1. 그럼 다른 과목은 얼마나 쓰는데?


2. 많이 쓴다.



1의 경우에 대한 반박을 해보자면


사실 많이 쓴다 안 쓴다의 개념보다 당위적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수 있다. 한국사? 뭐 안 써도 별 지장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땅히 알아야할 지식과 개념에 가깝다.


국어 : 책 읽는 데 쓴다.

영어 : 말할 필요도 없다.


사회는 과목별로 나누어 얘기 해보면


한국사 : 한국인이 한국 역사 공부하는 건 당연하다.

세계사 : 한국의 역사는 따로 형성된 것이 아니므로 세계사적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준다.


한국지리, 세계지리도 비슷하다.


윤리 : 철학 맛보기와 시민 사회에서 갖추어야할 덕목들을 학습한다.


경제 : 경제를 알아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안다.


법과 정치 : 헌법부터 생활법률, 정치는 우리가 시민으로서 당연히 알아야할 지식.


사회문화 : 사회를 바라보는 눈



하지만 이런 반박을 해도 위 과목들에 대한 당위성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저걸로 밥 먹고 사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 그런 사람들은 먹고사니즘+기계적 합리성에 매몰된 사람들이라고 본다.


당위성을 받아들이지 못 하면 서로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다.


2에 대한 반박


많이 쓴다는 사람들은 주로 이과 출신에 이공계를 나와서 그쪽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자기는 많이 쓰고 도움 받고 있으니까 당연히 많이 쓴다고 하는 거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소수에 해당한다.


또 문과에서도 경제학 경영학과 출신들이 많이 쓴다고 그러는데


사실 학부 수준에서는 별로 어렵게 쓸 것도 없다. 대학 1학년 때 배워도 충분하다.


학생들이 못 알아듣는 건 교수들 강의력 부족을 탓해야지.

신림동이나 노량진 가면 알기 쉽게 잘 설명해준다.


그리고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 상경계 교수들이 거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학위 받았다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것은 곧 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의미가 된다. 

얘네가 하는 게 전부 수리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니 수학을 엄청나게 쓴다.


자기가 공부한 게 그건데 학생들한테도 당연히 그렇게 가르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수학이 필요하고, 많이, 어렵게 공부해야 하는 게 맞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튼 미적분을 많이 쓰냐 안 쓰냐는 안 쓰는 쪽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정리하면


미적분 제외 반대론자들의 이런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런 식으로 주장할 게 아니라 미적분을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 훨씬 낫다.

미적분을 공부하면 논리적 사고력이 길러진다는 내용을 위주로 논지를 전개하는 게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 한다.


개인적으로도 수학이 논리력을 길러주는데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본다.


우리가 철학이나 역사를 공부해야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미적분 같은 수학을 공부하면 더 논리적인 사고력을 갖추어서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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