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감상문



  영화 『제르미날』은 1885년 출판된 에밀 졸라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19세기 중후반 산업혁명 시기의 프랑스 탄광촌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수준 높은 탄광 노동소설이다. 우리는 흔히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영국을 떠올리는데, 프랑스의 이야기를 들으니 느낌이 색달랐다. 이 당시의 프랑스는 제2제정 시기로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던 기간이었다. 프랑스 제2제국은 대내적으로 공업과 농업발전을 촉진시켰고 대규모 기술개발과 건설 사업을 벌였다.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대외 팽창의 야욕으로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았고, 내부에서는 국민들의 불만을 통제하여 정치적 안정을 꾀한다는 구실로 자유를 억압하였다. 일부 부르주아들은 자본을 축적하며 더 부유해졌지만 민중들의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영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광산의 사장과 임원 가족들은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며 더 많은 이윤을 갈구한다. 반면 광산의 노동자들은 매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하며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정당한 임금도 받지 못한다. 그들은 자본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데에 급급한 실정이다. 


 영화의 주인공 에티엔은 광산의 열악한 상황과 광부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파업을 결심하게 된다. 프랑스는 이미 혁명을 경험한 나라였다. 또한 유럽에서 1848년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여 사회주의나 노동운동에 대한 사상적 토대도 존재했다. 


영화에서도 광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자 공산주의 세력에 선동 당했다고 비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사장은 자기도 버는 거 없이 마치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며 노동자들을 다시 일터로 보내려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 말에 굴복하지 않고 파업을 계속해 나갔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려는 순수한 열정이 파업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절한다. 그리고 군대를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벨기에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온다. 이것은 100년도 더 된 서양에서 쓰인 소설이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얼마 전 있었던 코레일 파업 사태에서 사측이 노조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대체 인력을 뽑아서 운영을 하려고 했었다. 또한 많은 회사에서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는 내국인 노동자 대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저임금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화에서는 결국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이 파업을 포기하고 사측에 굴복하게 된다. 내 아이에게 빵 한 쪽이라도 먹이려면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에티엔은 같이 파업 했던 노동자들에게 파업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서 비난을 받는다. 이후 광산 폭발 사고가 벌어지고 에티엔은 지옥 같던 광산을 떠나며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에티엔은 떠나면서 노동자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기에 노동자들의 삶은 극적으로 향상되었다. 결국 그들 한 명 한 명이 흘린 피와 땀이 있었기에 지금의 노동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2014년 5월 18일 작성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