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스타드』 감상문



  영화 『아미스타드』는 1839년 쿠바 아바나에서 푸에르토 프린시페로 이동하던 노예 수송선 아미스타드 호에서 일어난 노예들의 점거농성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53명의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싣고 떠난 아미스타드 호는, 노예 중 한 명인 조셉 싱게가 주도한 봉기로 인해 흑인 노예들이 점령하게 되었다. 선장, 선원, 요리사 등을 살해한 이들은 남은 백인 선원들에게 배를 아프리카로 돌리라고 하였으나 선원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몰래 미국으로 향하게 하였다. 이렇게 미국으로 향하던 아미스타드 호는 미국 해군의 전함 워싱턴 호에 나포되면서 이들을 둘러싼 기나긴 재판이 시작된다. 


재판은 이 흑인 노예들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리기 위해 실시되었다. 해군 장교, 쿠바 상인, 스페인의 이사벨 2세 여왕은 저마다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연방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이들은 합법적인 노예가 아니라 납치된 상황임이 인정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또한 폭력을 사용한 것도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처벌받지 않았다.


 이는 일견 노예 해방을 위한 미국 사회의 노력의 성과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노예가 되는 과정에서의 불법이 발견 되어 노예가 되지 않은 것일 뿐 노예제 폐지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전부터 선장 소유의 개인 노예였던 한 명에 대해서는 선장의 소유권이 인정되어 선장의 상속인이 소유권을 넘겨받았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이 당시 미국은 노예제가 남아 있는 지역과 폐지된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미국의 북부 지역은 1787년 북서부 조례를 통해 노예제도를 폐지했지만 남부 지역에서는 노예제가 여전히 횡행했다. 


북부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게 된 것은 북부 사람들이 인도주의자들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공업이 발전한 북부에서는 값싼 흑인 노예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남부는 아직 농업 중심의 경제로 노예제를 통해 얻는 이득이 더 컸기 때문에 노예제가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 『아미스타드』에서는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해 힘쓰는 백인들 덕분에 흑인 노예들이 자유의 몸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흑인들을 아프리카에서 데려와서 노예로 만든 것은 바로 백인들이다. 자신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가축이나 물건처럼 대우했다. 


그랬던 그들이 마치 큰 아량을 베풀듯이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애초에 흑인들은 노예도 귀족도 아닌, 그저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이었다. 백인들이 멋대로 노예로 만들고 노예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병 주고 약주는 식의 행동이다.


 미국은 그들의 독립 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천명하였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노예제는 얼토당토않은 것이고, 결국 흑인들을 그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은 자유롭고 독립할 권리가 있지만 흑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영화 『아미스타드』는 ‘백인에 의한 흑인 노예 해방’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충실히 따른 작품으로, 백인 우월적 시각에서 제작되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4년 5월 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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