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 감상문



 영화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의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73년에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카푸아에서 일어난 노예반란을 이끌었던 트라키아 출신의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 출신으로 노천광산에서 일하는 노예였다. 그는 동료를 괴롭히는 경비병에 반항하다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우연히 검투사감을 찾던 상인에게 발탁되어 검투사 양성소로 가게 된다.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 양성소에서 교관을 죽이고 다른 노예들을 지휘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되지만 결국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진압을 당하며 모두 처형을 당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동양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스파르타쿠스를 보며 대부분 진승, 오광의 난을 떠올린다. 진나라가 멸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그들의 반란과 스파르타쿠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의 차이점은 스파르타쿠스의 난으로 로마가 멸망에 이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이 사건에 대해서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도 그의 책에서 특별히 중요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록 그들이 실패했고 로마는 건재했을 지라도 비인간적인 억압과 정치적 압제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그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스파르타쿠스는 공산당 선언, 자본론 등의 책을 저술한 맑스가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기도 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해 독일의 공산당 무장혁명조직이 이름을 ‘스파르타쿠스단’으로 지어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스파르타쿠스를 보며 떠오르는 또 하나의 사건은 고려시대에 무신집권기에 발생한 ‘만적의 난’이다. 고대부터 철저한 신분제 사회가 계속되다가 무신 정변 이후로 접어들면서 문무의 지위가 바뀌기도 하는 등 신분 질서에 많은 변동이 있었다. 만적의 난은 이러한 시기에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며 다른 노비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계획했지만 같은 노비의 밀고로 실패로 돌아간 사건이다.


 스파르타쿠스, 진승과 오광, 만적 등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야말로 사회 최하층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노예계급에서 반란, 혹은 신분 해방 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21세기에도 근대 이전의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우리나라도 아직도 ‘시민’이 아닌 ‘백성’의 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볼 때면 그들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어쩌면 그들은 고대의 스티브 잡스가 아닌가 싶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 누가 이런 스마트폰 시대를 상상이나 했을까. 아이폰이 없었다면 삼성의 갤럭시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파르타쿠스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유를 위해 봉기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패했지만 패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3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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