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The Pride』(프라이드) 감상문


 연극 『The Pride』는 영국의 배우 출신 작가 알렉시 캠벨(Alexi Kaye Campbell)의 데뷔작으로 2008년 영국 내셔널 씨어터(National Theatre) 초연,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뛰어난 작품성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비평가 협회, 존 위팅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등 공신력 있는 시상식을 휩쓸었다. 2010년에는 뉴욕 MCC 씨어터로 진출, <위키드>의 조 만텔로가 연출을 맡고 영화 <향수>의 벤 위쇼, <한니발>의 휴 댄시 등이 출연하며 대중적인 사랑까지 얻었다. 


이렇게 영국과 미국에서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인정받은 작품인 『The Pride』가 2014년 한국에서도 드디어 공연을 해서 보러 가게 되었다. 연극은 1958년과 2008년(한국 공연에서는 2014년)을 오가며 진행되는, 두 시대의 각각 다른 필립, 올리버, 실비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58년의 필립과 실비아는 부부, 그리고 올리버는 동화 일러스트레이터인 실비아의 동료 작가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던 필립, 세상을 돌아다니며 예술적 감성을 키우는 자유롭고 섬세한 올리버, 배우의 길을 접고 일러스트레이터로의 새로운 삶을 꾸리지만 어딘가 잘 풀리지 않는 결혼생활에 외로움을 느끼는 실비아. 세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한 저녁 식사에서 필립과 올리버는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고, 팽팽한 그 분위기 속에 실비아는 둘 사이에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후 필립과 올리버는 실비아 몰래 만남을 갖게 된다. 하지만 필립은 둘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올리버에게 이별 통보를 한다. 이에 올리버는 필립에게 간곡하게 매달리며 다시 생각해달라고 애원하지만 1958년의 시대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이었다. 결국 실비아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둘 사이를 인정하며 파국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 


 한편, 2014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1958년의 그들과 달리 굉장히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이다. 1958년에 동성애는 치료의 대상이었다. 필립은 올리버를 잊기 위해 병원을 찾아 갔었다. 의사는 동성애를 병리적인 현상으로 규정하고 필립을 섹스에 미친 환자정도로만 취급한다. 필립은 정신적인 사랑을 더 중시하고 이야기하려 하지만 의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필립을 오로지 육체적 쾌락에만 몰두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당시는 치료방식도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필립을 병실에 가둬놓고 남성의 음란한 사진을 보게 한 다음 구토를 유발하는 주사를 놓는다. 


이후에는 이 작업을 계속 반복한다. 이러한 치료과정을 통해 동성 성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2014년에는 동성애로 치료를 받지 않는다. 아직 시선이 그리 곱진 않지만 동성애를 ‘틀리다’의 관점이 아닌 ‘다르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예로 2014년의 실비아는 필립이 아닌 마리오라는 이탈리안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필립과 올리버의 절친한 친구로 나온다. 실비아는 동성애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오히려 둘 사이를 다시 이어주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2014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위기를 맞게 되지만 결국 극복하여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다. 


 연극 『The Pride』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나의 이목을 끌었다. 동성애에 대해 별로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했다. 작품을 보러 가서 처음에 느낀 것은 여성 관객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가졌던 생각이지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게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 어느 정도 입증된 것 같았다. 여자들은 드라마, 영화, 만화 등에 출연하는 남자 캐릭터들을 커플로 만들어서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한 사례로 예전에 『하얀거탑』이라는 굉장히 남성적인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랑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팬사이트에서는 남자 캐릭터를 게이화(化) 하여 커플로 만든 소설이나 이미지 등이 자주 올라 왔다. 이 드라마를 즐겨보던 나로서는 같은 작품을 보고서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있다는 점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었다. 그 밖에 남자 아이돌 그룹의 게이 만들기도 굉장히 흔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작품에서도 배우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만, ‘게이인 친구’를 갖는 것을 뭔가 쿨 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꽤 있다. 


 한편 이와 반대로 레즈비언에 대해서는 남자든 여자든 별로 관심이 없다. 이것은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남자 2명이 손잡고 거리를 걸어가면 다들 쳐다보고 수군거리지만, 여자 2명이 손잡고 걸어가는 것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대부분 레즈비언보다는 게이를 다룬 작품이 더 많다.


 그리고 우리는 남자끼리의 동성애는 어딘가 ‘더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자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조롱을 당하는 것도 대부분 게이들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진정한 사랑은 남성과 여성의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과 남성의 사랑이라고까지 말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남성과 남성의 사랑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주 먼 옛날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바로 성기의 차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삽입’이 가능한 성기를 가지고 있지만 여성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여성은 실질적으로 여성끼리 성관계를 가질 수 없지만 남성은 입과 항문을 통한 성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인식이 차이가 난다고 본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물론 ‘플라토닉 러브’같은 정신적 사랑도 있지만 결국은 육체적 사랑이 뒷받침 되어야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성은 사실상 육체적 관계를 맺을 수 없고, 남자는 육체적 사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레즈비언보다 게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럽다는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한편 작품은 가끔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굉장히 진지하게 진행된다. 주인공 남자배우들은 키스신까지 하며 열연을 펼친다. 남자끼리의 사랑이라는 것이 굉장히 낯설긴 했지만 배우들의 열연으로 어느 정도 몰입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큰 불편한 감정 없이 극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생각이 우호적인 쪽에 가깝기에 그랬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 사회는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강한 편이다. 


『The Pride』의 배경인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분위기라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이라기보다는 ‘혐오’ 쪽에 가깝다고 본다. 특히 연령층이 높고 남성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한 것 같다. 그분들이 생각하기에 동성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정상적 행태인 것이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 측에서는 동성애를 극도로 혐오하며 증오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동성을 좋아하건, 이성을 좋아하건 그건 각 개인의 자유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좋아하고 말고는 국가나 사회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집안의 반대 같은 거야 이성 간의 사랑에도 비일비재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고 병리적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동성애 문제는 굉장히 논쟁거리가 많아서 여기서 그런 내용을 다 쓸 수는 없지만, 개인의 문제를 사회가 너무 간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한 편의 연극 관람을 통해 ‘동성애’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동성애자에게 딱히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뭔가 생각이 크게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인생을 훌륭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전 생애를 통해 그 삶으로 인도해주는 원리, 즉 삶을 그렇게 훌륭하게 만들어줄 원리는 가족이나 명예, 재산도 아닌 바로 ‘사랑’이라고 하였다. 


그 사랑의 대상이 설령 이성이 아닌 동성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대상보다는 사랑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까? 연극 『The Pride』가 말하고자 했던 바도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른 것일 뿐, 결국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2014년 9월 1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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