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알파고 2국을 보고 느낀 점
아래는 대국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작성했던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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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초반부터 알파고한테 완전 말린 느낌이다. 알파고의 한 수 한 수에 계속 의미부여를 하다보니 심리적으로 완전 말렸다. 지금 형세도 알파고 우세. 또 질 것 같다
알파고의 무서운 점은 인간이라면 절대 두지 않을 수들을 둔다는 것이다. 그 말은 단순히 기보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학습하여 찾아낸 수를 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수가 처음에는 이상해보이는데 지나고나면 괜찮다. 전반적인 형세에는 영향이 없다
알파고는 실수조차도 오차범위 안에 있는 느낌이다. 자신이 유리하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지는 않는다. 마치 자신이 유리한 범위 내에서만 실수하는 것 같다.
또 알파고의 재미있는 점은 대체 왜 이 시점에 그곳에 둘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수들.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딱히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은 수들.
현재 중앙에서 큰 수가 나지 않는다면 흑이 반면 10집 가량 앞선 상태고 백이 둘 차례라 미세한 바둑이다.
알파고의 바둑은 최대한 경우의 수를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아마도 일부러 그렇게 두는 것 같다.
현재 대국 형세판단을 해보면 이세돌9단이 변화를 시도했지만 흑이 반면 10집 가량 앞서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세돌 9단이 평소같으면 이미 던졌을 것 같은데 너무 아쉬워서 계속 두는 것 같다. 안타깝다.
계속 느끼는 건데 사람이 기분 혹은 느낌으로만 가지는 것을 알파고는 다 계산이 가능한 것 같다. 뒷맛이 있다. 기분이 나쁘다. 두터움이 있다. 혹은 기세 싸움 이런 게 전부 다 수치적으로 계산이 되는 모양이다.
정말로 바둑의 신이 있다면 알파고일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드는 오늘이다.
결국 알파고가 2국도 이겼다. 남은 3판도 이세돌이 이길 확률은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알파고가 불리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것이 정말 무서운 점이다.
흑13으로 둔 것은 인간이라면 절대 두지 않을 수 였다.
보통이라면 당연히 207의 자리에 두었을 것이다.
이세돌9단도 이게 1국이었으면 분명 29 정도로 공격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14로 두었다. 아마 알파고를 의식한 것 같다.
흑15 또한 인간이라면 절대 두지 않을 수이다.
1국과 2국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알파고는 찌를 수 있는 곳은 다 찔러 두고
뒷맛을 남긴다든지 하는 걸 하지 않는다. 그냥 결정을 지어 버린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완전 배치되는 것이다.
흑17 또한 이해하기 힘든 수이다. 흑29도 색다르긴 하지만 괜찮고 둘 수 있는 수.
그리고 나온 흑37. 이 수도 인간이라면 절대 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바둑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을지도 모를 수라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수였다.
좌하귀 진행은 분명 흑이 손해본 것 같긴한데 지나고 나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흑67로 집을 지은 것 역시 좋은 수다.
백70은 너무 안이한 수였던 것 같다. 상변을 먼저 두는 게 맞는 듯 하다.
지금까지의 진행에서 가장 안 좋은 수가 아닐까?
흑81도 상상하기 어려운 수이다. 아마 이렇게 둘 확률도 1%도 안 될 것이다.
이어서 둔 흑85도 놀라운 수다.
김성룡 9단의 표현에 따르면 전성기 시절의 이창호9단이 아니라면 이렇게 둘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흑89로 이은 수도 프로들은 잘 두지 않는 수.
상변 백돌을 공격하는 과정도 뭔가 투박하긴한데 딱히 나쁘지도 않았다.
흑101로 둔 수도 놀라웠다. 흑117로 찌른 것도 위에 적은 것과 같은 맥락인듯 하다.
찌를 수 있으면 일단 찔러서 결정 짓는 것이다.
흑135까지의 진행으로 이미 흑의 승리는 결정되었다.
흑139, 141로 끊은 것도 그렇게 좋은 수 같지는 않았지만 잘 모르겠다.
흑157로 붙이고 흑159로 들여다 본 수도 정말 좋았다.
흑165까지의 진행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격차가 더 벌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수가 나온다.
백166으로 상변을 두었을 때 받지 않고 흑167로 중앙을 잡은 것이다.
이 수를 두자 이세돌9단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알파고 모니터를 쳐다보기도 했다.
왜냐하면 상변이 더 큰 자리였기 때문이다.
상변에서 백이 7집을 이득 보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는 듯 했지만
냉정하게 계가를 해보니 승패와는 관련이 없었다.
7집 이득 본 대신에 선수를 빼앗겨서 사실상 큰 이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172의 수로 173자리로 나가서 패를 하는 것이 마지막 승부수였는데
이세돌9단은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상태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다.
그 이후는 두나마나한 진행이다. 흑이 반면 15집 가량 앞선다.
오늘 바둑은 정말로 이세돌 9단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졌다는 것이 충격이다.
과연 1번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이세돌이 이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딥마인드가 이세돌에게 대국을 제의했을 때
과연 알파고의 실력에 대해 확신을 가졌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알파고의 실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프로기사와 두어야 할 것 같은데
2015년 10월 판 후이 2단과의 대국 이후 약 3~4개월 정도의 시간 이후 이세돌에게 대국을 제의 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비밀리에 어떤 프로기사와 대국을 진행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한중일의 프로기사와 대결을 했다면 분명 눈치를 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기사의 검증 없이 그들 자체적으로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다른 인공지능 프로그램과는 이미 작년 10월에 다 끝난 상황이고 유럽챔피언 판 후이도 이겼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상대는 없었을 것이다. 남은 건 자기 자신 뿐이다.
알파고는 하루에 자기 자신과 3만판, 1달이면 약 100만판의 대국을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ELO Rating을 뽑아내는 시스템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ELO Rating이란 체스에서 사용하는 제도로서 어떤 기사의 실력을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점수 차에 따른 승률 계산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100점 차이나는 기사와 대국 하면 70%의 승률로 이길 수 있다든지 하는 계산이 나온다.
아래는 세계의 바둑기사를 ELO Rating으로 나타낸 사이트이다.
http://www.goratings.org/
알파고는 자체 대국을 통해 ELO Rating을 추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ELO Rating에 근거하여 이세돌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여 대결을 제의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분명 무언가 수치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문을 보면 판 후이와의 대국 이전에도 ELO Rating 수치로 이미 이길 수 있다는 판단하에 대국을 진행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때는 다른 인공지능과 대국이라도 가능했다.
또 하나 생각이 드는 것은
100만 달러면 너무 싸다.
구글은 사실상 공짜로 전세계에 홍보한 셈이다.
알파고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면 절대 이런 헐값에 경기를 치러서는 안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리고 해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의 경우 바둑TV의 김성룡 9단, 이희성 9단 해설을 보았는데
다른 방송에서도 많은 해설이 있었다.
그런데 이세돌9단이 불리하다는 해설은 바둑TV 뿐이었다고 한다.
다른 곳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꼭 이번 대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기사와 외국 기사가 대국할 때 이른바 애국(?) 해설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볼 때는 분명 한국 기사가 지고 있는데 해설은 계속 딴소리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계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있고
계가를 할 때 한국 기사에게 유리한 쪽으로 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선 이기고 있다가 역전당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형세 판단을 할 능력이 되니까 해설 무시하고 내가 판단을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프로기사가 이야기하는 거니까 당연히 그냥 믿는다.
하지만 웬만하면 보수적으로 판단 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이제 바둑은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2국은 이세돌9단이 대국 직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세돌9단이 단 한 번도 앞섰던 적이 없었고 알파고나 이세돌9단이나 큰 실수가 없었다.
김성룡9단의 표현처럼 패착이다라고 할만한 수가 안 보였다.
그런데 두고보니 바둑은 흑이 이겨 있었다.
분명 흑이 실수를 하는 것 같은데 막상 형세판단을 해보면 흑이 나쁘지가 않다.
어쩌면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정수, 좋은 수라고 생각해왔던 수들이 사실은 최선의 수는 아닐 수도 있다.
대국 해설을 보면서 프로9단도 알파고의 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하는 느낌이 들었다.
1국에서는 해설진들이 알파고를 저평가해서 무시했었는데
2국에서는 오히려 알파고의 수를 한 수 한 수 의미 부여하면서 해석하는 모습이었다.
알파고는 인간이라면 절대 두지 않을 수들을 많이 둔다.
대체 어떻게 그런 능력을 학습한 것일까?
오히려 기계이기 때문에 둘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일반적인 프로기사들과 알파고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인간 프로기사들은 감각, 기분, 기세, 느낌 같은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로 유불리를 판단한다면
알파고는 모든 것을 수치화 하여 계산한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으론 그렇다.
알파고는 감정이 없으니까 어떤 모양같은 게 좋다 나쁘다 그런 것보다는
이 수를 두면 몇 집을 얻고 잃는가를 판단해서 두는 것 같다.
앞으로 바둑기사들도 수치화할 수 없는 것보단
정밀한 계산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계산기라는 것을 떠올리면 거기에 새로운 바둑의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바둑의 세계가 한층 더 올라가지 않을까?
어쩌면 바둑이라는 것은 계산 게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정말 놀라운 것은 포석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중반이나 종반은 이해하겠는데 대체 어떻게 포석이 이렇게 강한 것일까?
알파고는 부분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전체 판세를 보면 불리하지가 않다.
이미 다 계산을 하면서 두기 때문일까?
균형 감각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아 정말 알파고는 충격 그 자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잘 둔다.
만약 이번 5번기가 알파고의 5대 0 승리로 끝난다면
알파고는 이세돌보다 적어도 한 치수는 앞 선다고 봐야한다.
옛날 식 치수로 표현하면 선상선 ~ 정선 사이 정도는 될 것 같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게 알파고의 전부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대체 알파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대결을 끝까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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