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의 새누리당 입당에 대한 단상



2016년 3월 10일,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이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전날 이세돌 알파고 세기의 대결에 이은 또 하나의 충격적인 뉴스이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어떻게 평생 바둑만 두시던 분이 정치를 하게 되었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정치에 참여하는 게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생활이니까.


그렇다면 조훈현 9단이 새누리당에 입당한 것은 잘한 결정일까?


사람들은 그럴 줄 몰랐다고 한다.

정치를 하게될 줄도 몰랐고, 새누리당에 들어갈 줄은 더더욱 몰랐다고.


그 이유는 아마도 조훈현의 출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조국수는 전남 목포 출생이다.

목포의 천재로서 평생을 살아온 그이기에 아마도 새누리당으로 갈 거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조훈현의 일생을 추적해보기로 하자.


조훈현 9단은 53년생으로 1962년 만9세의 나이로 프로에 입단한다.

(호적상 53년생이고 실제로는 52년생이라고 함)

이것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이다.


그리고 만10살 때 일본 유학을 떠나 8년 5개월 간 일본에서 생활하였다.

귀국 이후에는 공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쳤다.


이후에는 계속 서울에서 생활하였다.


따라서 그의 친지들은 전남에서 생활했겠지만 조훈현 그 자신은 이미 고향을 떠난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아마 지역에 대한 정체성이 그다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바둑을 좋아하는 정치권의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두텁게 쌓았다.

이것은 여야를 가리지 않지만 주로 여권(박정희 정권) 인사들과 더 친했다.


조훈현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둑계 전체적으로 그런 경향이 강했다.


정권 실세였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한국기원 건물 설립에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이후락은 한국기원 총재를 역임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등장한 5공화국 전두환 정권에서도 바둑계는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전두환 자신도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정권 실세들도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3S 정책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개인적인 선호에 따른 것일수도 있겠으나

80년대에 바둑 기전을 많이 유치하는데 정권의 입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도 전두환은 조훈현과 대국을 여러 차례 했었다.


(위 사진은 99년에 있었던 대국)


딱히 조훈현이 여권 성향이라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둑계 전체가 정권의 도움을 받는 상황이니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고 본다.


1989년에는 응씨배 우승 이후 카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했다.


90년대에도 바둑계와 정치권은 관계를 이어갔다.


1996년에는 이창호 9단의 군입대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바둑 국보인 이창호 9단이 현역 판정이 나와서 군대를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여야 할 것없이 국회의원 105명이 나서서 부랴부랴 특별 케이스로 공익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하게 되었다.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바둑에 대한 입장은 딱히 변함이 없었고

바둑계도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바둑계에 도움이 되면 누가 되든 상관 하지 않는 이른바 흑묘백묘론(?)의 입장을 취했다.


국회 기우회에도 조9단은 초청 받아 국회의원들과 친분을 두텁게 쌓기도 했다.


이번에 새누리당에 입당한 계기도 국회 기우회장인 원유철 의원과의 친분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바둑계는 엄청나게 보수적인 사회이다.

누구 하나 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변화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 동네에 수 십년 동안 있다보면 진보적인 사람들도 보수적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쓴 내용을 정리해보면


1. 조훈현은 지역 정체성이 약할 확률이 높다.

2. 소득과 자산은 우리나라 상위 1% 안에 든다.

3. 바둑계의 보수적인 성향을 따라갈 확률이 높다.

4. 정치권과의 관계를 따져보면 현 여당 쪽과의 친분이 훨씬 두텁다.

5. 그의 나이는 65세이다.

6. 바둑계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면 여야를 따지지 않는다.


정도의 단서들이 있다.


지역, 직종, 소득, 자산, 나이(세대), 친분 등 어느 쪽을 봐도 야당 쪽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추론하면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본다.


나는 바둑기사가 정치를 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당에서 일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조훈현 9단이 새누리당에 입당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

어쩌면 인생 최대의 악수가 될지도 모른다.


바둑계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비록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새누리당의 당론을 거스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일단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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