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알파고 1국을 보고 느낀 점


'세기의 대결'로 불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번 대결은 알파고의 선승으로 시작하였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미 지난 2015년 10월에 있었던 판 후이 2단과의 대국도 대단하다고 느꼈었는데

설마 이세돌을 이길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당시 실력은 대체적으로 한국기원 연구생 2군 정도 수준이라는 평가였다.


이세돌 9단도 2점 정도 치수라고 말했었다.


이후 약 4~5개월 간 실력을 향상시켰다고 해도 정선 정도의 치수는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알파고는 그 예상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실력을 단기간에 향상시킨 것일까?


알파고는 처음 알고리즘을 짠 이후에 단 4주 만에 엄청난 실력 향상을 이루어냈다고 한다.


4주 동안 국제 바둑 사이트 KGS의 기보 16만개, 3000만수를 입력 시켜서 학습했다.

이들은 거의 아마추어 6~9단의 기보를 참고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알파고는 하루동안 자기 자신과 3만판의 대국을 할 수 있어서

1달 동안 무려 100만판의 대국을 수행했다고 딥마인드 측은 전했다.


프로기사의 기보는 저작권 때문에 활용하지 못했고

KSG의 16만판 중 프로기사 수준의 기보는 약 10%도 채 안 된다고 한다.


아마추어의 기보만 가지고 학습하여 이세돌을 격파한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바둑계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충격에 빠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바둑 두는 사람들은 대부분 바둑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체스는 이미 20년 전에 컴퓨터가 이겼고

장기도 일본의 경우 2012년에 컴퓨터가 쇼기(일본장기) 프로기사를 꺾은 바 있다.


하지만 체스, 장기와는 달리 바둑은 경우의 수가 비교가 되지 않기때문에

인공지능이 이기려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이번에 산산조각 났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번 대국은 상당히 의미있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인간을 이긴 인공지능'이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한편 이번 대결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보았던 바둑 이슈 중에 가장 큰 사건이다.

바둑이 이렇게 언론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 1달 간 국내에 있는 언론이란 언론은 죄다 몰려와서 취재해 갔으며

50개 이상의 외신들도 이번 대결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오늘 대국장에는 300명 이상의 기자들 뿐만 아니라 여야를 망라한 유력 정치인들과 장관까지 찾아왔다.

또 바둑TV 보니까 신아영이 리포터 하고 있더라.


해설진도 바둑TV, KBS, 호텔 대국장 해설, 한국기원 해설, YTN에 인터넷 방송에 인터뷰 대기하던 기사들까지 포함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다.


네이버와 다음에서는 하루종일 실시간 검색어와 메인 뉴스를 이세돌 알파고 대결이 차지했다.


네이버 중계는 중간에 보니까 35만명인가 보고 있었다.

바둑 중계 자체도 생소한 일인데 그걸 수십만이 보고 있는 광경도 색달랐다.


바둑계는 오랜만의 큰 관심으로 기뻐했겠지만 이세돌의 패배로 한켠에는 씁쓸함도 있을 것 같다.


아래는 이세돌 알파고 1국 기보이다.



이세돌 9단은 초반에 너무 무리한 수를 계속 두면서 대손해를 보았다.

그런데 중반 좌하귀에서 백이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하면서 많이 따라잡혔다.


유창혁 9단은 이때는 흑이 좋아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미 백이 앞서고 있었다. 형세판단을 제대로 안 하고 기분상 감각적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것은 알파고가 96부터 110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수읽기 했다는 것이다.

백96을 둔 이유 자체가 백102로 침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세돌 9단도 102를 보자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다.

인공지능이라면 둘 것 같지 않은 수였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수였는데 백106으로 찌른 것은 악수였다. 그냥 백108로 두어야 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이미 계산이 끝났던 모양이다.


백116의 수를 두고 싶어서 선수를 잡기위해 이렇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흑은 흑121로 두었는데 이것은 당연히 선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알파고는 받지 않고 백122로 이었다.


흑은 흑123으로 둘 수밖에 없었는데


백124로 먼저 붙인 게 아주 좋은 수였다.


흑129는 대실수였다. 백132의 자리에 두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우하귀가 흑이 아니라 백이 6집을 만들었다.


백130도 불필요한 수고 백136의 자리도 흑143자리를 먼저 둔 이후에 두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자리도 백136으로 둘게 아니라 흑169 한칸 위의 자리로 두는 게 정수였다.


144의 수순까지 진행되면서 흑이 꽤 이득을 보았다.


이 당시 유창혁 9단은 게임이 끝났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형세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고 말한 것이다.


이미 형세는 백에게로 기울었다.

알파고가 프로기사라면 하지 않을 자잘한 실수들을 계속 남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이 이기는 국면이다.


초반에 손실본 게 정말 컸으며

우하귀에서도 이미 흑이 손실인 상태에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는 득본 게 없는 상황이었다.


흑 147은 패착이다.


마지막 흔들기를 시도하려면 좌변을 먼저 두었어야 했다.

백이 147자리를 두었을 때 너무 뒷맛이 안 좋긴하지만 그 길만이 뒤집을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했어도 흑이 이길 확률은 아주 낮아보인다. 사실상 끝난 거나 마찬가지인셈.


백150으로 두 칸 벌린 상황에서 이미 게임 종료다.

또 백154로 침착하게 둔 것도 정말 좋은 수였다.


여기부터는 흑이 아무리 잘 두어도 무조건 백이 이기는 바둑이다.


바둑TV 유창혁 9단은 초반에 알파고의 실력에 놀라다가 중반 이후 형세를 완전히 낙관했는데

알파고는 한 번도 불리했던 적이 없었다.


시종일관 유리한 형세를 이끌어갔으며 정확한 형세판단으로 대국에 임했다.


심지어 납득하기 어려운 실수들도 어쩌면 오차범위 안에 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정말 무시무시한 실력이다.


혹자는 알파고가 전성기 때의 이창호9단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심정의 동요가 없는 인공지능 알파고.

정확한 형세판단으로 이기는 최선의 길을 찾아간다.


무서운 실력이다.


해설진들이 알파고에 대해 그저그런 인공지능 중 하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오늘 대국으로 프로기사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프로기사의 기보 없이 최강의 프로기사 이세돌9단을 이겼다는 것은 정말....놀라움 그 자체다.


앞으로의 4판은 의미가 없다.


이미 이 대결은 알파고가 이겼다.


물론 그것이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었다거나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같은 종말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는 것일 뿐이다.


어차피 바둑도 정해진 규칙과 계산 하에 벌어지는 게임이라 언젠가는 컴퓨터가 이길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앞으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2국 이후의 상황도 예측이 안 된다.


2국도 알파고가 이긴다면 알파고가 5대 0으로 이길 거 같다.


2국에서 이세돌 9단이 이긴다면 4대 1로 이세돌 9단이 이길 거 같다.


인공지능 같지 않았던 알파고.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알파고.


남은 대국을 잘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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