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일 작성


미학 오디세이 서평


 미학 오디세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논객이자 미학자인 진중권이 쓴 책으로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읽은 1권에서는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의 작품을 통해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미학 오디세이는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미학을 재밌고 알기 쉽게 풀어 써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중간 중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라는 위대한 두 철학자의 가상 대화를 삽입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점이 인상적이다. 1권에서는 ‘가상’을 핵심 개념으로 설정하고 예술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서술하고 있다.


 미학 오디세이는 먼저 원시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간은 왜 예술이란 걸 하게 되었을까? 예술의 본래 목적은 감상이 아니었다. 감상을 위한 예술의 전통은 겨우 몇 백 년 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예술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인류 최초의 그림이 그려진 알타미라 동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먼저 ‘유희 기원설’에 따르면, 벽화나 집단무 같은 원시 예술은 ‘남아도는 에너지의 방출 통로’다. 놀 거리가 아무 것도 없었던 원시에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먹고, 자고, 배설하는 등의 본능적인 행위들 외에 특별한 활동 없이 지내던 중,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들은 그림을 그렸던 게 아닐까싶다. 


 여기서 예술은 노동에서 비롯되었다는 다른 가설이 나온다. 예술이 노동을 위한 도구적 형태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노동의 수고를 덜기 위한 노동요, 노동 도구에서 변형된 악기들, 의사소통을 위한 사냥감이 되는 동물이나 농작물 등의 그림들은 모두 그런 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주술적 의미이다. 


동굴 벽화에 대고 창이나 도끼로 가격한다든지 수렵무를 통해 사냥을 재현하는 것은 더 많은 사냥감을 잡게 해달라는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실제 기능은 회화를 통해 동물의 급소를 파악하고 수렵무를 통해 사냥의 절차와 테크네를 반복 학습하는 것이었다. 원시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예술이 가진 이런 기능을 알고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술로 소망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인간은 이제 신을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 이 위대한 존재의 권능에 매달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종교가 발생했다. 또 다른 부류의 인간들은 비유를 벗겨내고 사물들의 진짜 연관을 알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철학이 생겨난다. 예술은 더 이상 주술이 아니게 되었고, 주술이 ‘가상’으로 여겨지는 순간에 탄생한다. 


이 가상은 현실에 아무런 필요가 없다. 이후 인간들은 이 가상이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사유, 즉 예술과 진리를 연결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가상과 진리의 두 개념을 둘러싸고 대략 두 가지 사유가 있었다. 플라톤은 예술이 가상을 포기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가상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두 사유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여러 가지로 변형되고 뒤섞이면서, 미학사 속에서 계속 되풀이 된다.


 고대 예술은 이집트에서 시작한다. 이집트인들은 사물을 묘사할 때, 그들이 이미 여러 각도에서 보았던 시각적 정보를 분석하여 그 사물의 본질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도록 하나의 그림 안에 시각적 종합을 제시했다. 그들에게 예술은 하나의 시각적 추상이었다. 이것은 보편 개념을 외부로 표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가상은 탄생되었다. 이후 예술은 그리스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성장하고 완성되어 로마 시대에 멸망하였다. 


 빙켈만은 그리스 예술을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으로 특징지었다. 니체는 여기에 ‘아폴론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리스에는 명랑한 아폴론 정신의 예술뿐만 아니라 비극이 존재했다. 그리스 예술의 양대 축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적 충동이다. 이것은 저 깊은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광포한 힘이다. 조형예술의 맑고 투명한 정신인 아폴론과, 깊고 어두운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정신 디오니소스. 인류의 모든 예술은 서로 대립하는 이 두 가지 충동으로 말미암아 발전했다. 


아폴론이 개별화로 생긴 세계를 긍정하면, 디오니소스는 개체를 파괴하여 원래의 근원적 존재의 품안으로 되돌린다. 이 땅에 행동하는 개체로 태어난 것부터가 고통의 근원이다. 비극이 주는 지혜는 바로 이 가혹한 삶의 진리다. 이 디오니소스적 지혜를 아폴론의 아름다움으로 감성화한 것, 그게 바로 비극이다. 이렇게 몰락하여 근원적 일자와 다시 하나가 될 때, 우리는 개체화의 괴로움, 영원한 윤회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해탈에 이르게 된다. 쓰라린 파멸 뒤에 무한한 희열의 세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중세 예술은 가상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처럼 예술을 이데아 세계와 감각 세계 다음에 놓지 않고, 오히려 예술은 감각세계와 정신세계 중간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예술은 미메시스가 아니고 영혼의 거울이다. 예술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내면의 형상에 따라 창작한다. 


또 플로티노스는 예술과 미를 밀접히 관련지어, ‘예술미’란 개념에 도달했다. 그는 진정한 미는 감각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질세계의 재현 대신에 인간의 ‘영혼’과 초월적인 ‘신성함’을 표현하려했던 비잔틴 예술은 그의 정신과 합치된다. 중세 회화는 눈에 보이는 외부세계의 재현을 포기하고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을 담으려 했다. 


또한 대상에서 해방되어 ‘형태와 색채의 자유로운 구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세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한 형체로 ‘정신’의 계기를 강조하고, 밝은 빛과 화려한 색채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비스런 ‘관조’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중세에서는 예술의 지위가 단순한 가상, 즉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의 모방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이데아에 가까운 위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세 후기에 이르면 물질세계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은 현실에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는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한 것이므로 세상 사물 속엔 창조의 질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이 지으신 세계를 묘사하는 건, 곧 창조의 아름다움을 파악하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 철학적 분위기에서 고딕 자연주의가 등장했다. 이렇게 중세 예술은 고딕으로 완성되며 새로운 시대를 기다린다.


 중세의 예술은 감각 세계의 ‘가상’을 포기했지만, 새로운 시대는 ‘가상’의 부활과 함께 시작된다. 르네상스의 천재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회화의 목적이 ‘가시적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라 하였다. 회화가 인식의 기능을 발휘하려면, 자연을 뜯어고치려 해서는 안 되며, 되도록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그에게 창의력이란 ‘재현의 규칙을 발견하는 능력’이었다. 이렇듯 그는 역사상 가장 강한 형태의 모방론을 고수했다. 또한 르네상스 예술은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그리스 예술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었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바로크 예술이 등장했다. 바로크 예술은 주로 전통적 고전주의와 대립되는 루벤스풍의 윤곽은 뚜렷하지 않고, 묘사는 격정적이며, 구도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그림을 가리킨다. 17세기 고전주의 미학은 르네상스 미학과 큰 차이가 없다. 르네상스가 그들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고전주의 예술이 데카르트적 ‘이성’의 예술이라면, 바로크는 무엇보다도 ‘감정’의 예술이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은 ‘미학(aesthetica)'이란 말을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처음으로 인간의 ’감성‘을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이전까지 예술은 이성적 작업이었다. 하지만 바움가르텐은 예술이 감성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감성을 인식으로 간주함으로써 감정을 복권시켰다. 그의 업적은 예술이 가진 ’인식적 기능‘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한편 칸트는 우리가 예술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대부분을 이야기 했다.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는 목적은 단순히 즐거워지기 위해서이지, 유식해지려 하거나 잘난 척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칸트 이전 사람들은 진리나 도덕적 교훈을 얻기 위해 예술을 감상했고, 그러한 것을 얻을 수 없는 예술은 타락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미를 ‘유용성’이라고 생각한 것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유용성을 가진 것이 더 아름답다고 여겼다. 다 빈치에게 예술은 과학이었고, 바움가르텐에게는 감성적 인식이었다. 하지만 칸트는 이 모든 사유를 분쇄한다. 


그에 따르면 미는 사물의 객관적 성질이 아니다. 장미꽃은 나에게는 아름답게 보일 수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보편타당하게 아름다운 사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미에 대한 생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쓸모 있다고 다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칸트 이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칸트는 이것을 ‘미적 무관심성’이라 표현했다. 칸트는 예술에 절대적 규칙이 있다고 보지 않았고 예술은 천재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그러한 사유에서 ‘낭만주의 미학’이 나오게 된다. 이후 헤겔은 예술을 발전 단계에 따라 분류한다. 그에 따르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물질적 매체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정신적 내용을 표현하는 능력이 커진다. 결국 가상의 부활로 시작된 근대 예술은 그야말로 꽃을 활짝 피웠고, 미학의 개념이 생겨났으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미의 관점이 자리를 잡은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취미론과 미적 범주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며 마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역시 ‘가상’이다. 현실과 분리되어 가상이 되면서 예술은 탄생했지만, 가상은 그리스 시대에 정점을 찍고 사라졌다. 중세 사람들은 가상을 넘어서고자 노력하였으며, 가상은 현실보다 이데아에 더 가까운 존재라고 여겨졌다.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가상은 다시 부활했고, 그 이후에는 가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책 초반에 제기된 예술과 진리를 연결하는 것에 대한 물음의 답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는 아직 명확한 판단을 못 내리겠다. 겨우 책 한 권 읽은 것으로 예술에 대해 함부로 말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조금 더 공부를 하면서 생각해보아야할 문제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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