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2일 작성


『세계화의 덫』서평



 <세계화의 덫>은 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도 세계화의 물결이 몰아치던 시절 나온 책이다. 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세계화의 폐해와 위험성에 대해 설파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책 제1장의 제목이 ‘20 대 80의 사회’다. ‘20 대 80의 사회’라는 말은 21세기에는 노동 가능한 인구 중에서 20%만 있어도 세계경제를 유지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사회로부터 배척된 80%의 사람들은 약간의 오락물과 먹을거리에 만족하며 조용히 살아야만 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세계화가 진행되면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외국으로 나가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미 있던 기업들을 인수하고 경영합리화를 통해 그 나라의 시장을 점령하느라 일하는 사람의 수만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론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은 좋은 것이고, 국가의 개입은 나쁘다는 것이며, 국가에 의한 감독보다는 탈규제화, 무역과 자본 이동의 자유화, 공공기업의 민영화를 주장한다.


 한편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세계화를 통해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 했던 세계화주의자들의 말과는 달리 세상은 양극화가 심해지며 중산층이 붕괴되고 하향평준화가 심화된다고 한다. 세계화가 진행되며 다국적 기업들은 보다 싼 인건비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지역,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곳, 각종 규제가 철폐된 곳으로 공장을 계속 옮겨 갔다. 


고용 불안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의 여러 나라에서는 일자리 보장 정책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에 그런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국고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국민 전체가 희생하는 꼴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회사의 본사를 탈세가 비교적 쉬운 카리브 해의 섬 같은 곳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산업자본보다는 금융자본의 권력이 점점 강해지며 세계금융시장이 세계를 지배한다. 단적인 예로 멕시코 금융시장이 붕괴되며 투자가들이 멕시코에서 돈을 빼가자 금융 권력자들은 IMF와 미국 정부에서 멕시코에 돈을 지원하도록 막후에서 조종하여 자신들의 돈을 지킨다. 한 경제학자는 이를 “투기꾼들을 위한 대 탈주극”이라 대놓고 혹평하기도 했다.


 또한 저자들은 세계화 논리는 이미 발전한 선진국들에게 유리한 논리이지 개발도상국에 함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아시아의 기적은 가난과 저발전으로의 탈출이 시장경제적인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전 세계 경제학자와 기업인들에 의해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한국 등의 나라는 자유무역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입한 철저한 자국 산업 보호 원칙 아래 급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서구 신자유주의자들이 말 하는 것과 정 반대의 이야기이다.


 세계화의 폐해는 지속적인 임금삭감, 보다 긴 노동시간, 축소되는 사회복지 등으로 나타난다. 저자들은 유럽이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바뀌어가는 상황을 비판하고 유럽식 대안을 제시한다. 모두 10가지의 대안이 있는데 핵심내용은 투기자본을 통제하고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또한 유럽이 하나 되어 단일 통화를 만들고 연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화의 덫>은 1996년에 나온 책이니만큼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 많다. 책에서 경고한대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기도 했고, 각종 문제들도 그대로 발생했다. 이 책의 관점에서 세계화를 비판하는 사람도 무수히 많이 나왔다. 그래서 사실 책 내용은 식상한 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민정부 시절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사회가 급속도로 변했다. 종신고용 문화는 사라지고 ‘노동의 유연화’라는 미명 하에 비정규직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기업의 공장들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값 싼 노동력을 찾아 이동했고, 고용 활성화를 무기 삼아 정부에게서 혜택을 받기도 한다. 


정부는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공기업은 민영화 하며 세계화 시대에 발을 맞췄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한 나라 안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노동자들과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유무역 시대에 따라 여러 국가들과 FTA를 체결했다. GDP는 성장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건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세계화로 이득을 본 것은 대기업을 비롯한 소수에 불과하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화가 초래한 양극화이다.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었고, 고소득층과 빈곤층의 비중이 늘었다. 또한 총소득 대비 가계소득 증가세의 정체가 2000년대에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 대부분은 기업소득의 비중 확대에 맞물려 있다. 2000년 69%에 이르렀던 가계소득 비중이 2012년에는 62%까지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중 17%에서 23%로 증가했다. 소득이 가계에서 기업으로 이전된 것이다. 총소득(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이 빠르게 하락하는 상황 속에서 가계는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세계화의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자유무역이다. 이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었다. 기업은 세계화를 위하여 WTO와 FTA 등으로 각종 경제장벽을 제거해 왔다. 우리는 집에서 미국이나 영국, 독일, 혹은 중국, 일본 등 세계 어디에도 갈 수 있다. 바로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말이다. 삼성전자가 만든 스마트폰과 스마트TV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다른 물건들도 대부분 외국에서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면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것이 당연히 이득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세계화이며 소비자의 세계화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세계화가 기업과 생산자의 세계화였던 것과 정반대이다. 모든 경제 주체들은 자신의 이득을 추구한다. 산업 자본들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공장을 옮겨 다닌다. 금융투기 자본들은 이자가 싼 나라에서 돈을 빌려서 수익률이 높은 나라에 투자한다. 그렇다면 소비자도 ‘합리적 경제행위’ 주체로서 당연히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을 찾아갈 것이다. 생산업자와 수입업자가 같은 품질의 제품을 해외보다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면, 소비자는 그에 대응하여 해외직구로 비용을 절감하는 게 당연하다.


 이미 우리나라의 소비자들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해외 직구’의 등장이다. ‘해외 직구’란 최근 해외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FTA와 인터넷의 발전 등으로 구매비용이 감소하자 이런 소비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유통 시장의 비정상적 가격 행태에 아예 눈길을 해외로 돌린 것이다. 동일한 제품을 해외 직구를 통해 구매하면 세금, 운송비용을 고려해도 국내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다. 


심지어 국내 업체의 제품인데도 해외 직구로 사는 게 더 저렴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이니 해외직구는 나날이 증가 추세에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을 통한 해외 직접구매 규모는 1115만9000건, 1조1029억원이다. 2012년(794만4000건, 7억720만달러)보다 건수는 40%가량, 금액은 47% 급증했다. 유통업계는 관세청에 잡히지 않은 소액 구매까지 더하면 실제 시장은 이보다 두 배가량 될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2013년 기준으로 해외직구의 시장 규모는 약 2조 2천억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직구는 국내 소비자들이 제한적 품목만 존재하던 내수시장에서와 달리, 거대 소비시장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물건과 가장 유사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 다양한 제품 선택기회로 소비자의 후생을 확대 시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직구가 많이 이루어지는 산업일수록 유통폐쇄성, 시장지배력 등 진입장벽이 크고, 독점적 초과이윤이 존재할 가능성이 큰 산업들이다. 


해외직구를 통해 소비자들은 해외의 가격정보까지 알게 되면서 구조적 가격 차이까지 막을 수 있다. 시장지배력을 가진 국내 기업들이 국내외 가격차별 정책을 펼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기업들이 국내에서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시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해외직구는 해당 제품의 수입가격 하락뿐만 아니라 일반 물가수준 안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독과점 수입제품의 경우는 직접적인 가격하락 압박을 받고, 일반 수입품은 제품 다양화로 인한 경쟁심화로 동일 품목 군의 전반적인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해외직구를 통해 2000년대에 화장품 가격 거품이 빠진 사례가 있다. 독점 수입업체들이 수입하던 화장품이 병행 수입이 허용되면서 일본 국내외 가격차는 2005년 1.7~1.8배에서 2007년에는 1.3배까지 줄어들었다. 국내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이는데, 우리나라에 입점한 외국 의류 브랜드와 캠핑 용품 업체에서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유통업 측에서는 해외 직접구매는 국내 소비가 줄면서 내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을 펼치며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격을 내리겠다고 하기 보다는 국내 소비 기반 악화를 볼모로 잡고 해외 직구 열풍을 막으려는 것이다. 심지어는 수입 브랜드의 사이트 차단까지 하며 해외 직구를 막으려 든다. 정부는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여 내수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해외직구는 경제가 세계화되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다국적 기업들 자신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본인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물건을 생산하고 저렴한 이자비용으로 자본을 조달하면서, 소비자에게는 손해를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기업 환경이 세계화 된다면 소비 환경도 세계화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것이 진정한 ‘세계화’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세계화’가 아닌 모든 경제주체를 위한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유권자로서 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우리의 권리를 행사한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소비를 통해 우리의 권리를 행사한다. 우리는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살 권리가 있다. <세계화의 덫>이 출간됐던 96년경에는 아직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본의 횡포에 대해서만 걱정했지 이런 상황은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자본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은 소비자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소비자들도 세계화의 과실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해외직구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바람으로 앞으로는 더 강력한 태풍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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