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궁을 다녀와서


 수원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다. 그것을 처음 느낀 것은 화성행궁으로 가는 길에 팔달문을 보았을 때였다. 도심 한 복판에 그런 옛 건축물이 있다는 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화성행궁에 도착했더니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정문인 신풍루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갔을 때 눈에 띈 것은 거중기였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것이었다. 정약용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거중기는 수원화성을 지을 때 유용하게 쓰였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에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감탄이 나왔다. 


 좌익문 앞에는 옛날 복장을 한 사람이 서 있는데, 옷이 많이 더워보여서 안쓰럽기도 했다. 좌우로 남군영과 북군영이 있다. 이곳에는 군인들이 배치되어서 경비를 맡았다고 한다. 또 좌측으로 서리와 비장이 지내는 서리청과 비장청이 있고, 우측으로는 집사가 지내는 집사청이 있다. 이곳들은 별로 특징은 없었다. 


그저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을 잘 나타내주는 건물들이라는 느낌이었다. 비장청 위쪽으로 외정리소 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이 행차할 때 화성 행궁에서의 행사 준비를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여러 가지 행사도구들이 있었는데, 우스꽝스러운 것들도 있었다. 


 중앙문을 지나면 봉수당이 나온다. 봉수당은 정조가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이름 붙인 것이다. 봉수당 옆에 경룡관은 당태종 궁궐을 이름을 차용한 것인데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그 옆쪽에 정조가 행차 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건물인 유여택이 있다. 유여택 앞에는 해시계가 있는데 어떻게 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여택을 지나 복내당으로 들어섰다. 


몇 년 전 인기 있었던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라고 한다. 화성행궁 곳곳에 드라마 촬영의 흔적이 있었다. 난 그 드라마를 별로 보지 않아 그다지 재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찾아온다면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장안성에 있는 궁궐의 이름을 차용한 장락당이 그 옆에 있다. 화성행궁에는 중국 궁궐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 몇 개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조선이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노래당, 낙남헌을 지나 득중정으로 나왔다. 그곳에서는 역사 강연이 열리고 있었다. 화성행궁, 수원화성에 관련하여 조선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다. 화성행궁 뒤편의 언덕으로 올라가면 내포사와 미로한정이 나온다. 미로한정은 이름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잠시 쉬며 화성행궁을 내려다보았다. 언덕을 내려와 전사청, 제정 등을 보았다. 


제정을 보니 경주의 포석정이 떠올랐다. 작은 연못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화성행궁을 다 둘러보고 난 소감은 솔직히 밋밋했다. 뭔가 웅장한 건축물들을 기대하고 갔던 탓인지, 소박한 건물에 실망했다. 하지만 예술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또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구석에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2008년 상반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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