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 주경철 저

 

이 책은 근대 세계사를 해양 문명의 관점에서 조망한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단순히 몇 몇 나라를 중심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15세기부터 시작된 근대 해양 세계의 팽창은 세계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세계의 여러 지역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바다를 통해 통합적인 체제 하에 들어갔고, 각 나라들은 자기들만의 세계가 아닌 전 지구적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양존하는 복잡한 양상을 나타냈다.


한편 우리가 공부했던 세계사는 대부분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이 지배적이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그런 유럽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지만 그것이 유럽이 해왔던 모든 역사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유럽은 15세기 이후 점점 강력한 세력을 떨치며 19세기에 들어서는 제국주의적 지배자로 떠올랐다. 저자는 그런 역사적 사실들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저술하고자 하며, 우리가 잘못된 지식으로 배웠던 신화적인 인식 틀을 수정하고자 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책의 구성은 제1근대 세계구조의 형성’, 2폭력의 세계화’, 3세계화·지역화된 문화등 총 39장으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근대 세계의 전반적인 구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짜여 졌는가에 대해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1장의 핵심주제는 중국의 해상 후퇴와 유럽의 해상 팽창으로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근대사 발전의 결정적인 구조적 전환의 계기라고 말한다.


15세기 초 세계 최고의 해양 문명을 자랑하던 중국의 명() 왕조는 왜 바다를 떠났던 것일까?


당시의 아시아는 해상 교역 망이 상당히 발달했었다. 정치·군사 세력이 분산되어 있고 문화적으로 아주 다양하여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비동질적인 곳이었다. 아시아의 바다에서는 각지의 상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고 이방인들을 배척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정화의 대 원정이다. 정화의 대 선단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고,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중국의 위엄을 만 천하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떠났던 그들은 갑자기 한 순간 문을 닫아 버린다. 북쪽의 유목 민족 세력들의 위협과 내륙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정권을 장악하여 해상 팽창을 주도했던 환관세력의 몰락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중국의 이 결정은 근대 세계사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때마침 아시아의 바다로 진출한 유럽 세력이 패권을 놓고 다투는 사이 중국은 울타리를 쌓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아편전쟁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세계사의 거시 구조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을 제시하는데 유럽중심주의, 지구사, 세계체제론 등이 그것이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2장은 초기 해상 팽창의 주역이었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제국 확장과 식민지 개척에 대해 이야기 한다.


2부 폭력의 세계화에서는 해상 진출의 도구였던 선박·선원·해적 등의 자세한 설명으로 시작하여 근대의 폭력이 어떻게 자행됐는지를 고찰하고자 했다. 군사혁명과 유럽의 폭력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와 더불어 여러 군사 문화를 살펴본다. 또한 해상 교역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화폐와 귀금속의 세계적 유통이다.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당시의 세계 경제 체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예무역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서양 삼각 무역의 실태와 그 밖의 지역에서 벌어졌던 노예제에 대해 샅샅이 들여다본다. 3부 세계화·지역화된 문화에서는 환경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해양 문명의 팽창이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여러 사례들의 제시를 통해 살펴본다. 삼림 파괴, 멸종, 각종 전염병의 발발 등은 단순히 생태계에 일어났던 변화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음을 밝힌다.


다음으로는 기독교 문화이다. 그들이 바다로 떠났던 것은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신대륙의 발견자로 흔히 알고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또한 경제적 목적 외에 종교적 목적으로 에덴동산을 찾아 떠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삶과 마찬가지였던 기독교 문화는 전 세계의 수많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각지에서 잘 살고 있던 사람들로서는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들이 강요하는 선교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갈등으로 수많은 희생이 벌어졌다.


마지막 9장에서는 언어·음식·과학 기술 등을 주제로 이야기 한다. 아메리카 노예들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크레올 언어는 의사소통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 음식의 전파는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아메리카 대륙의 작물이었던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은 전 세계 각지로 퍼지게 되어 식량난에 허덕이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주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는 이러한 작물들을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또 중요한 작물로 사탕수수를 들 수 있다. 인도 지역의 작물이었던 사탕수수는 카리브 해와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탕수수는 인력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작물이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엄청난 수의 흑인 노예들이 잡혀오게 되었다. 이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설탕은 영국으로 수출되어 홍차에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문화가 생겼다. 초기에는 귀족이나 자본가 계급만 마실 수 있는 귀한 것이었지만 생산량의 폭발적 증가로 서민 노동자 계층도 쉽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영국의 노동자들의 주 음료는 브랜디 같은 술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홍차로 자연스럽게 대체되었다. 산업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휴식시간에 술을 마시게 되면 다음 노동에 지장이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던 참에 홍차라는 멋진 대체재가 나타난 것을 기뻐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취하지 않으면서 맛있는 음료수를 마시게 되어 다음 노동에도 지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설탕은 칼로리가 높아서 부족한 열량을 채우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사탕수수 하나가 전 세계 경제 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고 재밌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평가하자면 굉장히 만족스러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위의 이야기 같은 새롭고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서 15~18세기 근대의 해양 문명사를 통해 세계사를 접근하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역사를 학부 수준의 내용으로 알기 쉬운 서술방식을 채택해 읽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고, 그 당시를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전반적으로 개설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책은 개설서로 활용하고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으면 세부 주제에 관련된 서적과 논문을 찾아보라는 뜻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가 있었던 것은 화폐와 귀금속의 유통, 음식의 전파 두 가지 주제였다. 나중에 이와 관련된 서적들을 읽어서 더 자세하게 알아볼 것이다. 이렇게 지적 욕구를 채워주고 또 관심 있는 주제를 알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싶다.


 

2015년 7월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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