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근대철학의 흐름

 

 

<목 차>

 

1. 서양 근대철학의 성립 배경


1) 유명론

2) 새로운 우주관

3) ‘개념의 발견

4) 수학적 방법 도입

 

2. 데카르트


1) 서양 근대철학의 시작

2) 데카르트의 등장

3) 직관과 연역

4) 1원칙과 신 존재 증명

5) 심신 이원론

6) 자아

 

3. 경험론


1) 경험론의 시작

2) 로크

3) 버클리

4.

 

5. 비판적 고찰


1)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명제는 과연 맞는 말일까?

2) 자아의 존재





 

1. 서양 근대철학의 성립 배경

 

1) 유명론


유명론(nominalism)이라는 용어는 보편은 명칭이다라는 표현에서 온 것으로, 플라톤-기독교적 실재론(realism)에 상대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로스켈리누스와 아벨라르, 오컴 등의 유명론자들은 보편개념은 실재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은 개별자(구체적 사물)일 뿐이며, 보편개념은 단지 개별자들로부터 감각적 경험의 종합과 추상을 통해 얻어진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윌리엄 오컴은 단호하게 개별자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관념적으로 보편적인 것을 가리키는 표상들이 있다 하더라도, 개별자의 보편성은 그 실체 속에 존재하지 않고, 오직 상징으로만 존재한다고 하였다. 신학적 측면에서 유명론은, 중세적 세계관을 완전히 와해시키고, 형이상학적 측면으로는 플라톤 이래 서양의 철학 세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이데아적 실재론을 분쇄한 것이었다. 유명론은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제공하여 이후 경험론자와 실증주의자의 옹호를 받는다.


또한 개별자를 강조함으로써 유명론은 한편으로 중세의 교권적 체계를 부수었고, 다른 한편으로 신앙의 근거를 내면과 계시의 세계로 옮겨 놓았으며 지상세계를 개별자에게 돌려주었다. 보편개념은 신성불가침한 천상적 소산이라기보다 단지 우리 정신작용의 소산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신은 우리의 추론에서 얻어지는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 이성의 발견이었다


철학이 더 이상 신학의 시녀가 아니게 되었고, 신은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이며 오로지 의지로만 다가갈 수 있는 존재로 파악되었다.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관념적으로 인식 가능하다는 데서 신은 존재론에서 인식론적 대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2) 새로운 우주관


르네상스 시기에 새로운 우주관이 등장했다. 바로 무한하고 동질적인 우주였다. 기존의 중세 스콜라적 우주관과 달리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세계가 주변도 중심도 없으며, 따라서 지구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며 하나의 운동하는 행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를 수많은 별들 가운데 하나로 보고 다른 별들과 마찬가지로 원형 궤도를 그린다고 봄으로써, 원리상 프톨레마이오스에 근거한 중세적인 우주론을 붕괴시켰으며 뒷날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재확인된 태양 중심적 세계관을 개진하였다.

 

덧붙여 그는 만물의 위치는 신으로부터 등거리에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우주관에 의해서 지상 세계와 천상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방법으로 양적으로 탐구되어야만 하는 동일한 자연법칙들이 세계의 모든 영역에서 타당하게 되었다. 니콜라우스의 우주론적 상대성 원리는 스콜라적 세계관에 반하여 모든 유한자는 무한자와 동일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명제를 정립했다


모든 유한한 것은 무한자를 계측할 수 없다. 이렇게 되어 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오성과 이성의 문제에서 가슴과 심정의 문제로 옮겨가고 교회의 권위는 끝없이 전락하면서, 신앙은 급격히 신비주의적 색채와 경련적이고 표현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코페르니쿠스와 조르다노 브루노의 지동설은 실증적으로 물리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새로운 우주관을 확립했다. 우주공간의 적극적인 무한성이라는 개념과 지동설의 개념이 새로 결합되면서, 종래의 신 중심적인 목적론에 대해 조화라고 하는 내재적인 목적론을 불러들여 범신론적·생명적 우주 개념을 확립시켰다.


이제 무한한 공간 어디에도 절대적인 중심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우주가 전적으로 평등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가치의 위계적 서열이 무너졌다는 말이다. 천상적 세계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중세 까지 인간은 신에게 복종함과 지상에서 영광됨을 동시에 지녔다. 그러나 새롭게 이해된 신은 우주의 이성으로는 해명할 수도 복종할 수도 없는 숨은 신이었다. 신은 하나의 초월적 원인으로, 다시 말해 세계의 밖에서 세계의 운행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내부에서 우주가 운행되는 법칙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목적론이라는 외재적 철학을 대신하여 조화라고 하는 내재적 원칙이 상정되었다. 이것은 자연 현상의 이면에 영적인 활동이 있음을 인정하는 물활론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상은 일정한 구조를 가지는 전체로서의 질서를 지니지는 못했다. 자연철학자들은 시종일관 우주가 생성하고 발전하는 혼돈된 모습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했고, 자연 현상을 하나의 개념으로 간주하고 그것이 지닌 본질적 관념에 집착했다. 자연 세계에 대해 관심이 증가한 것은 르네상스가 전개되면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었지만, 그것에 대한 인식과 묘사는 스콜라 철학적인 것이었다.

 

3) ‘개념의 발견

 

케플러는 르네상스 철학에서 근대 철학을 이행하는 시기에 위치하는 과도적인 과학자였다. 그의 세계관적 특징은 한편으로 르네상스 시기 철학과 같은 관념적 범신론이다. 그에게는 조화의 개념이 세계 법칙적 질서의 사상을 내포하는 철학적 중심개념이 된다. 인간은 이 조화로운 우주에 편입되어 있으며, 조화로운 비례 관계를 인식하고 이를 도덕적 완성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인 작업은 무엇보다도 조화로운 우주의 아름다움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곧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의 이데아에 우주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그러나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와 그 속도 사이에 관련성이 있음을 통찰했을 때, 그는 갑자기 근대 철학에 한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영혼이라는 사상과 개념(물활론)은 작용원리로 우주에 적용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작용원리로 힘이라는 개념이 요구되었다. 자연에는 오직 힘들만이 작용하며, 세계의 구조는 생명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신적인 시계장치만이 남게 된다


그는 힘이라는 개념과 영혼이라는 개념을 분리시키고 힘을 개별적 물체들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두 물체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함으로써, 본질적인 점에서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물활론적이고 유기체론적인 견해를 극복하고 물질적 결정성이라는 관점에서 자연을 고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당대의 천문학과 물리학에서 여전히 지배적이던 엔텔레케이아와 목적론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들을 넘어선 것이다.

 

 

4) 수학적 방법 도입


케플러의 우주에서 수학적 조화라는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자연인식에 수학적 방법을 도입하는데 성공하여 과학을 근대적인 방향으로 크게 전진시킨 사람이 갈릴레이였다. 그는 경험적 사실을 관찰하거나 실험하는데 수학적·계량적 방법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방법적으로 근대 과학의 획기성을 보여준다. 곧 사물 간의 관계를 양적으로 파악하여 그들 사이의 인과 관계를 수학적 법칙으로 표현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적·스콜라적 형상 또는 이데아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추방한다. 그가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이라고 본 것은 자연에 대해 묻고 그 물음에 대해 대답하는 실험이었다.

 

갈릴레이는 자연에 대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단지 관찰이라는 경험적 요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연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이론을 개입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입장이 수학에 대한 그의 철학적 입장이다. 자연이라는 책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이 언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던 것이다


그는 근대 과학의 방법을 최초로 확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우주를 지배하는 수량적 관계를 규명하는 일이 자연을 연구하는데 유일한 대상이 되었다. 물체의 운동과 변화도 완전히 수량적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에,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이행하는 것을 가지고 변화를 목적론적으로 설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은 당연히 거부되었다.

 

2. 데카르트

 

1) 서양 근대철학의 시작

 

서양근대철학의 시초는 베이컨과 데카르트이다. 베이컨은 중세의 사고방식인 믿는 것이 힘이다.” 대신 아는 것이 힘이다.”를 들고 나왔고, 데카르트는 창조된 것이 존재다.”가 아닌 사유가 곧 존재다.”를 주장했다. 둘의 공통점은 신 중심 사고에서 인간 중심 사고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지식, 사유가 인간의 본질이며, 근대적 이성이 깨어나고 도구적 합리성을 가지고 자연을 극복하고 개척해나가는 게 인간이다. 이런 면에서 베이컨과 데카르트는 근대 서구적 사고의 기틀을 만든 인물들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서양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들 때문이다.

 

베이컨은 영국의 경험론자로 경험에는 유용한 경험과 유용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바라보았는데, 그는 유용하지 않은 경험의 원인인 선입견이나 편견 즉 우상(Idols)을 타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귀납적 방법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선입견과 편견을 벗겨내면 비로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여기서 나오는 베이컨의 4대 우상론은 미신, 교황의 권위, 장원적 사고, 성경에 대한 맹신과 같은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핵심이다. 베이컨이 철학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고 볼 수는 없지만,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 근대적 사고를 열었다는 점에서 베이컨 이전과 이후로 근대 철학은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 데카르트의 등장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또한 대륙 합리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물리적 인과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라는 동시대의 우주관을 공유하면서, 여기에 철학적 기초와 포괄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이 사물을 계시적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 이성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방법적으로 인식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서 자연의 세계 전체가 인과의 법칙에 따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체계라고 하는, 이른바 기계론적 자연관이 성립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신의 권위로부터 벗어나 세계를 인간 이성에 기초에 설명하고자 했고, 그 인간 이성은 수학적 원리였다. 그는 신학의 시녀로 불리며 지위가 바닥에 떨어진 철학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성적 원리들을 분명히 세우고 거기에서부터 세계에 대한 지식을 연역해내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연역은 전제를 요구한다. 이것은 마치 유클리드의 기하학 체계가 몇 개의 공리와 공준에서부터 연역되어 나온 것과 같다. 데카르트는 이에 대해 인간 정신의 이성적 능력이 인간과 세계에 관한 최초의 출발점이며 진리의 원천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계시는 심정과 신앙의 문제이지, 지성적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이것으로 지상 세계를 물활론적이고 신비주의적 관념으로 해명하는 것을 물리치는 한편, 올바르게 인도되는 인간의 이성이 적절한 방법에 따라 우주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몽테뉴 식의 고대적 회의주의도 물리친다. 데카르트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청산하고 우주의 질서를 기계론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인간 정신과 그 지적 확실성의 기초를 정립하는 완전히 새로운 철학을 구성하기로 결심했다.

 

3) 직관과 연역

 

데카르트는 수학적 출발점, 곧 공리의 자명성은 직관에 있다고 생각하여, 직관과 연역의 힘에 의해 우리는 착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물에 대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직관과 연역을 구사할 수 있는 인간적 역량을 확신했다. 이것은 곧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으로부터 구분해내는 역량, 이것을 원래의 양식이라든가 이성이라고 부르며


이것은 또한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똑같은 법임을 입증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나누어 가진 이성을 확신했다는 점에서 데카르트는 철저한 인본주의자이며, 그의 저서 방법서설의 서두는 이성의 권리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관심은 이 이성을 단련하고 정련하는데 집중되었으며, 수학은 이것을 위한 가장 뛰어난 모범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단 우리의 정신이 관념을 명석판명하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관념이 경험에서 형성된다는 경험론의 가설과는 출발을 달리 한다. 오히려 우리의 경험이 관념에 대응한다고 보았다. 곧 수학적으로 추리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질서정연하게 나아감으로써 우리가 모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3482+41257의 계산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계산의 답을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데카르트는 수학이 지니는 추리의 확실성과 명증성이 그를 수학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직관과 연역이라는 기초 위에 지식의 거대한 체계를 세운다. 이들 두 방법만이 지식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고, 다른 어떤 방법도 오류를 범하기 쉽고 위험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직관은 맑고 빈틈없는 정신이며 우리가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을 제공하는 정신활동이다. 또한 선명한 개념뿐만 아니라, 실재에 관한 진리도 제시한다. 연역은 직관에 의해 확실하게 파악된 사실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추론들이다. 직관과 연역은 동시에 모두 진리를 포함한다. 직관에 의해 우리는 직접적으로 완벽하고 단순한 진리를 포착하며, 연역에 의해 우리는 정신의 연속적인 추론으로 진리를 파악해 간다.

 

데카르트는 이전의 추론방식이 그저 형식 논리적인 것이어서 개념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반면 진리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죽은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연역법에 확실하게 알려진 하나의 사실에서 그 사실이 내포하는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의 사실로부터 추론하는 것과 하나의 전제로부터 추론하는 것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우리는 하나의 전제로부터 오류 없이 추론할 수 있지만, 그 결론의 진리값은 전제의 진리값에 종속된다. 데카르트가 이전의 철학과 신학을 거부한 이유는, 참이 아니거나 단지 권위에 기반한 전제로부터 삼단논법의 방법으로 결론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지식이 개인 자신의 정신 속에서 절대적인 확실성을 가진 기초 위에 쌓아지기를 원했다. 또한 데카르트는 직관과 연역을 위해 규칙을 정한다. 바로 명증, 분석, 종합, 열거의 네 가지 규칙이 그것이다.

 

4) 1원칙과 신 존재 증명


그는 철학적 체계를 정립시킬 새로운 제1원칙을 찾아 나선다.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하나의 진리가 그가 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철학에서 마치 수학의 공리 같은 것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회의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의심하고 의심해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의심, 즉 회의한다는 것은 사유한다는 것이고 사유하는 주체는 필연적으로 어떤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때 주체는 물리적 성질을 가진 존재가 아닌 관념적 존재이다. 왜냐하면 사유하는 실체는 그 존재를 위해 장소도 물질적 사물도 그 근거로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이 사실에 의해 자아의 존재를 증명하는 한편, 자아의 본질도 규정해나간다. 어떠한 사유도 그 행위자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나의 존재는 확증되고, 나의 존재는 사유에 의해서 보증되므로 철두철미하게 관념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제 확증된 자기 자신의 존재와 방법에서 확립시켜 놓은 명석판명한 사유양식을 수단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는 이 증명을 이중으로 행한다. 먼저 인과론적 증명은 자신의 불완전성이 완전한 존재자에 대한 관념의 기원일 수는 없으므로 신의 존재라는 사실은 자기로부터 유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볼 때 무에서는 무엇도 나올 수 없으며, 더 완전한 것이 덜 완전한 것으로부터 나올 수도 없다. 결국 원인 속에 결과가 내포되어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매우 명석판명하게 판단했을 때 완전함에 대한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관념은 객관적인 실재이다. 그런데 그러한 완전함이 내 불완전함의 소산일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데카르트는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 외부로부터, 다시 말해 완전한 존재인 신으로부터 그의 마음에 심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증명은 존재론적증명이다. 이것은 신의 관념이 내포하고 있는 속성으로부터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관념을 명석판명하게 인식할 경우 우리는 곧바로 그 속성을 인식한다. 예를 들면 삼각형이라는 관념을 명석판명하게 떠올릴 경우, 세 변과 세 각을 지니며 두 변의 합이 나머지 한 변의 길이보다 긴 도형이라는 속성이 곧바로 떠오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의 관념도 속성들을 내포하며, 특히 존재의 속성을 내포한다. 신의 관념은 완전성이라는 속성을 지니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완전할 수는 없으므로, 완전성이라는 속성은 당연히 존재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완전하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생각해낼 수는 없다. 이렇게 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해 낸다.

 

5) 심신 이원론

 

신의 존재가 증명된 이상, 기만자 또는 악령이 나로 하여금 잘못되게 인식하도록 끊임없이 기만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만하는 존재가 완전한 존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완전한 존재자인 신이 끊임없이 나를 속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른바 연장된(extended) 실체라는 물리적 대상에 대해 명석판명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물을 감각해보려고 의지를 갖는다 하더라도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감각할 수는 없고, 또 어떤 것을 감각하지 않으려 해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각이 생긴다. 그렇다면 물질적 대상에 대한 인식이 나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될 수는 없다


신은 결코 기만자는 아니므로 신 자신이 직접 그러한 관념을 나에게 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신은 성실할 터이므로, 내가 명석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반드시 그대로 존재하는 사물이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한 인식과 신의 존재라는 전제로부터 외부 대상의 존재를 증명해낸다.

 

이렇게 정신과 물질은 분리된다. 정신은 사유하는 것에 의해서만, 곧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고, 물체는 정신과 관련 없이 연장함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은 전적으로 비연장적인 사유를 본성으로 하는 실체이고, 물체는 정신적 성질을 전혀 가지지 않는 단지 연장만을 본성으로 하는 실체라는 것이 된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이원론은 단순히 사유의 순수성과 독자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연으로부터 모든 영적 또는 정신적 활동이 배제되어 자연을 순수하게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질은 곧 연장이다라는 새로운 세계관은 자연에서 모든 심리적 성질을 구축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적 자연관, 곧 엔텔레케이아적 사상이나 목적론적 사상을 철저하게 타파하는 동시에, 르네상스 시기 자연철학자들의 물활론적 우주관까지 극복해냈다.

 

6) 자아

 

데카르트 철학은 지식의 근원을 철두철미하게 주관의 정신 위에 놓은 것으로, 당시까지 유례없는 것이었다. 그는 신 대신에 자아를 우주의 중심에 가져다 놓고, 이것을 기원으로 하여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을 유출시킨다. 데카르트적 자아는 회의함으로써 정련되고 추상화된 인식의 주체이다. 자아가 기술적 주체로 서게 되면서 주관은 신비가 걷힌 지상 세계를 능동적으로 지배하고 조작해나갈 수 있게 된다. 정신이 세계를 대상으로 표상함으로써, 그 정신은 이것을 자유로이 조작할 수 있는 기계론적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 정신은 그것을 자기 주위의 새로운 현실로 만들어 나간다. 자연은 단지 기계론적 합리주의에 의해 인식하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기계화할 수 있는 실현 대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근대의 커다란 특징은 바로 이처럼 자아의식이 점증하고 세계가 대상화되는 것이다.

 

 

3. 경험론

 

1) 경험론의 시작

 

로크는 우리 지식이 경험으로부터 나오며 또한 경험에 의해 제약 받는다고 말한다. 로크 이전의 경험론자들은 인간 이성의 역량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의심도 품지 않았다. 이는 올바른 방법을 도입한다면 인간의 이성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 데카르트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로크를 비롯한 영국 경험론자들은 과연 인간 정신이 우주의 참다운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이 경험론은 세계관적 편향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경험적 인식이 객관적일 수 있다는 입장에 섰을 때, 곧 경험이 객관적 실재를 매개한다는 입장에 설 때 그것은 유물론적 경험론으로서, 외부 세계의 존재와 그 실체의 객관성을 믿는 베이컨이나 로크가 여기에 속한다. 이에 반해 관념론적 경험론은 객관적 실재가 감각들의 복합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경험은 결코 객관적 인식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이런저런 형식을 띤 주관적인 어떤 것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버클리와 흄이 이러한 인식론에 속한다.

 

2) 로크


로크는 윌리엄 오컴이 한 것처럼 보편개념의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 그는 우선 지식이 관념에 기초한다고 봄으로써 전통적인 철학적 입장을 수용하지만, 그 관념을 획득하는 인간의 정신적 경로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외재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으나, 로크의 관념은 그 기원을 경험으로 가진다는 점에서 입장을 전혀 달리 한다. 관념은 기원은 경험이다. 경험은 감각과 반성을 통해 관념을 형성한다


우리는 감각에 의해 외부 세계를 경험하고, 이 감각 인식에 대해 반성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경험, 곧 관념을 형성하고 조합하는 데 이른다. 로크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 없이는 반성도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작용은 관념이 공급되었을 때 시작하며, 이 관념들은 감각을 통해 외부에서 온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것이 그의 타불라 라사로서 플라톤으로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ᄁᆞ지 의심할 여지없이 받아들여지던 생득관념론, 곧 사람은 이미 정신 속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관념의 집합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는 생각을 파괴해 나간다.

 

로크가 부정하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의 확실성이 아니라 이러한 관념이 생득적이라는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원리들이 확실한 것은 그것들이 생득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이 사물에 대해 반성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확실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로크는 그의 저서인 인간 오성론에서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지니는 관념들 대부분의 출처라고 주장한다


감각을 통해서 정신에 의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단순관념이다. 이에 비해 복합관념은 수동적이지 않고, 그것을 구성하는 데는 정신이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정신은 여러 단순관념들을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하며 추상하기도 한다.

 

만약 감각 인식이 우리 지식의 근원이라면, 그 감각 인식을 발생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곧 인식대상의 문제가 남는다. 로크는 인식의 기원을 우리의 정신에 관념을 생성시키는 대상의 내재된 힘이라 정의한다. 로크는 이것을 제1성질과 제2성질로 나누는데, 1성질은 실제로 물체 그 자체에 내재된 성질이다. 따라서 제1성질에 의해 생성된 관념들은 그 대상에 내재된 성질을 닮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과는 실제로 둥글다는 것이다. 1성질은 입체성, 연장, 생김새, 운동, 수 등을 말한다. 이에 반해 제2성질은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 관념이다. 우리는 사과에서 붉은 색을 보지만 그것은 사과 속에 내재된 성질이라기보다 사과 속에 있는 어떤 관념을 창출시키는 힘이라는 것이다. 곧 제2성질은 색이나 소리, 맛이나 향기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 성질들은 어떤 실체에 의존한다. 어떤 실체가 존재한다는 가정 없이는 우리는 어떤 성질들의 관념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로크는 감각은 실체에 의해 비롯된다.”고 말함으로써 감각의 개념으로 실체를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관념에 규칙성과 일관성을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실체이고, 감각적인 지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실체라고 한다.

 

3) 버클리

 

버클리는 로크가 실체의 존재를 가정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로크에게 실체는 정신에 의존하지 않는 고유한 물질이었다. 그러나 버클리에게는 실체가 정신에 의존하거나, 정신 이외에 다른 실체는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그는 신 시각론에서 우리의 모든 지식이 실제로 느끼는 시각과 그 밖의 감각 경험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공간이나 크기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는 감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물들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단지 그 사물들에 대한 여러 가지 시지각만을 가질 뿐이다


버클리는 실체나 공간의 관념이 지각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그의 철학체계를 이루는 근본명제인 존재란 지각된다는 것이다를 주장한다. 이리하여 사물은 그것을 지각하는 정신이나 사유하는 존재 외부에서 독립적 존재를 갖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떠올리는 것들은 마음속에 형성한 그것에 대한 관념이지, 그것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지각을 가질 수 없는 영역 밖에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론에 기초하여 버클리는 로크의 실체개념을 공격한다. 절대적 존재는 사유하는 그 주체일 수는 있어도, 사유되는 대상은 그 사유로부터 벗어나자마자 그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단지 감각할 수 있는 사물들은 지각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결국 그가 부정하는 것은 우리 사유의 대상으로서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인 것이다


실체는 추상관념이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실체는 감각 인식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중력, 인과율 등의 개념들은 우리의 정신이 감각 경험으로 얻어낸 관념 이상의 것이 아니고, 또한 그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버클리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역량에 대해 한계를 지어주는 것과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물들은 내 정신의 외부에 존재를 가진다. 왜냐하면 나는 경험에 의해 사물들이 나의 정신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것들을 지각하는 시간 사이에 간격이 있을 때에도 그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정신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물들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의 규율에 따라 그 사물들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게 하는 전지전능한 영원한 정신이 존재한다.” 이렇게 되어 사물들의 존재는 신의 존재에 귀속되며 신은 곧 자연에 있는 사물들이 질서를 갖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대상들을 지각하지 않을 때에도 대상들이 계속 존재하는 것은 그것들에 대해 신이 계속적으로 지각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버클리는 인간 정신이 인과율에 대해 통찰할 수 있음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우리의 감각 자료에서 인과율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결국 인과율은 신의 관념으로부터 온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철학적 유물론과 종교적 회의주의를 붕괴시키고자 했던 버클리 철학 전체의 근본적 동기이자 목적이었다. 그의 경험론은 인간정신은 언제나 개별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에만 대응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아는 추상관념이란 이렇나 경험들로부터 추론된 것으로서 어떤 대응하는 실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이 흄을 통해 현대 철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4.

 

철학사에서 흄은 흔히 로크로부터 시작하여 버클리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온 철학적 흐름을 완성시킨 철학자로 언급 된다. 이 흐름의 주제는 인간은 경험에서 유래하는 것 말고는 세계에 관하여 어떠한 지식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주요한 논지는 로크가 말하듯이 경험은 감각과 반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음의 작용은 오직 감각 인식에 주어진 물질에만 향하고 있으며, 물질은 색, 촉감, 소리, , 맛 같은 원자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흄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하였으며, 그 결과 어떤 힘이나 신에게 위촉받은 마음의 작용등은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서로 다른 사건들 사이에 필연적인 연결이란 있을 수 없으며, 남는 것은 외부의 대상을 지니지 않고 또 그것이 속할 지속적 주체도 지니지 않은 채 흘러가 버리는 지각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모든 것이 인간에 대한 문제이며, 인간이야말로 만물의 척도라고 보았다.

 

흄은 마음에 제공되는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인상과 관념이라는 두 개의 범주로 구분되는 지각으로 이루어진다고 답한다. 정신의 내용은 감각 경험에 의해 우리에게 제시된 물질들로 환원될 수 있으며, 그러한 물질을 그는 지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지각이 인상과 관념이라는 두 가지 형태를 갖는 것이며, 사유에서 최초의 재료는 인상이고, 관념은 이것을 모사한 것이다. 그 둘의 차이는 단지 생생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각할 때 최초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어떤 인상들은 생생하며 선명한 인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인상들에 대해 반성할 때 우리는 인상에 대한 관념을 가지며, 그 관념들은 원래의 인상보다 덜 생생한 일종의 영상이 되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하나의 인상이지만, 이 고통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관념이다. 인상과 그것에 대응하는 관념들은 모든 면에서 비슷하고, 그 차이는 단지 생생함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상이 없이는 관념이 있을 수 없다. 한 관념이 단순히 인상을 모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당연히 모든 관념에 대해 선행하는 인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상의 동물 같은 인상 없는 관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관념들은 감각 경험에 의해 우리에게 제공되는 인상들을 혼합, 전치, 축소함으로써 얻어지는 허구물이라고 한다.

 

단순한 관념들이 연합하여 복합관념을 이룬다. 흄은 단순관념들을 묶어주는 어떤 일반적인 원리들이 있으며, 그 원리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그것들은 유사의 법칙, ·공간에서의 접근의 법칙, 그리고 인과율의 법칙이다. 흄은 이 중에서 인과의 개념이 지식에 대한 신념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동시에 모든 과학이 근거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보고 그 본질을 캐나간다.

 

그러나 그에게 인과율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감각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경험, 곧 특정한 사건들의 연속이 관습적으로 확인될 수 있다는 점에 기초한다. 곧 그는 인과에 대한 유물론적 파악을 부정하는 것이다. 흄은 먼저 인과율의 관념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그 기원을 찾는데, 관념은 인상의 모사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인과율의 관념이 어떤 인상을 모사하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추론 가능하다고 믿는 어떠한 이성적 과정이 있다면 그것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신 속에 인과율의 관념이 생기는 것은 어떤 동기에 의한 것일까. 여기에 대한 흄의 통찰은 유명하다. 인과율의 관념은 우리가 대상들 간의 어떤 관계를 경험할 때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필연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흄은 인과율이 우리가 관찰하는 대상 속의 성질이 아니라, 오히려 예증에 관한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정신 속에 생겨나는 연상의 습관이라고 본다. 인과율은 모든 인간적 지식의 중심이므로 이 원리에 대해 공격하는 것은 우리 지식의 확실성을 그 근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흄은 물체나 사물이 우리의 외부에 지속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를 가진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말할 어떤 합리적인 정당성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관념들이란 인상의 모사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모두 인상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상은 우리 내부의 주관적 상태일 뿐 외부 실재에 대한 분명한 증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은 사물들이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우리가 사물들에 대해 감각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것들이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감각할 때마저도 우리는 단지 인상만을 얻을 뿐이지 인상과 구분되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외부 사물의 존재를 믿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흄은 이러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상상이 인상의 두 가지 특성을 다룰 때 생기는 산물이라고 한다. 인상에서 우리의 상상은 항상성일관성을 배운다. 계기적인 인상들 사이의 밀접한 닮음,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서 동일한 내적 닮음을 나타내는 일련의 구성요소들과 그 인상들의 분명하고 항상적인 공간적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그 인상들을 서로 동일시하도록 이끌며 실제 그것들 사시에 나타나는 중단을 무시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것들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흄이 대상 또는 지각이라고 무차별적으로 말한 하나의 지속적인 사물로 대치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지각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흄은 어떤 사물이 지각되지 않고 존속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거짓이며, 따라서 중단된 지각들이 동일할 수 있다는 것도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지각이 지속적인 존재를 가진다면 지각도 판명한 존재를 가지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흄은 지각이 판명한 존재를 갖지 않음을 경험에 의해 정당하게 추리한다. 만약 지각이 판명하다면 환각의 문제가 있게 된다.

 

그는 항상성이라는 현상이 상상을 자극하여 인상들을 지속적인 대상들로 바꾸게 하는 데 근원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지만, 항상성이 그 자체로서 충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관성이 첨가된다. 이러한 이유로 상상에 의해 우리는 어떤 사물들이 우리 외부에 독립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지 합리적 논증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상이 사물과 연관되어 있다는 가정은 추론 상 어떠한 근거도 없기때문이다.

 

이러한 회의주의적 근거 아래 흄은 전통적으로 인격의 동일성으로 정의돼온 자아에 대해 탐구해 나간다. 흄이 마음의 동일성이 허구적이라고 할 때, 그는 진정한 동일성, 곧 하나의 단일하고 불변하는 존재로서 동일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각들 사이의 관계로 분석될 수 있는 동일성은 인정한다


흄은 진정한 동일성이라는 의미의 자아라는 관념은 우리에게 없다고 한다. 우리의 지속적인 동일성에 대해 인상을 주는 것은 기억의 힘이다. 흄은 정신을 여러 지각들이 계속적으로 그들의 현상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극장에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연극이 상연되는 무대에 대해 어떤 특정한 관념을 갖지 않을 뿐이다. 만약 자아가 축적된 지각이라고 한다면 그 지각들은 어떻게 축적되는 것일까? 우리의 지각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들을 연결시켜 기억 속에 침전시킬 무엇인가가 없다면, 흄이 말한 느슨한 동질적 자아조차 형성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가 인식의 통일적 구성으로서의 자아를 말하며 발전시킨다.

 

흄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 본성 그 자체가 인간 경험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식론의 가장 중요한 문제, 곧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데카르트로부터 한 세기 뒤에 흄은 데카르트의 질문에 답변하느라 애쓰기보다는 그 질문 자체의 중심을 이동시킨다


중요한 것은 확실성의 개념이 아니라 인식하는 주체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확실한 지식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치했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발견할 수는 없고, 단지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의 한계는 인식의 도구, 곧 인간 마음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밝힐 수 있다는 것이 흄의 신념이었다.

 

흄은 로크와 버클리가 구성한 경험론적 입장을 공유하면서 한편으로 어떤 경험론자도 이르지 못하는 영역까지 그의 철학을 밀고 나간다. 그가 모든 관념이란 인식으로부터 마음에 이른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철학이 로크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흄은 관념들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전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우리의 습관적인 신념이 무엇을 말하든 간에 관념에 대한 경험론적 설명이 규정짓는 지식의 한계를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험론적 전제로부터 가차 없이 밀고나가 현대적 분위기로 물든 새로운 회의주의를 대두시키는 것이다. 쾌감과 불쾌감을 포함하는 우리의 오감이야말로 우리가 소유하는 모든 관념의 유일한 근원이므로, 감각 인식으로 추적될 수 없는 모든 관념은 허구적인 것이다.

 

흄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우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양식을 보여준, 그의 세대 고유의 낙천주의를 공유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 사유의 구조를 탐구하기 시작하자마자 과학적 방법에 대해 그가 지니고 있던 낙천주의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흄은 관념이 인간의 정신 속에 형성되는 과정을 밝혀가다가, 인간의 사고 범위가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를 발견하고 아연 한다. 그리하여 초기 시절에 이성에 보내던 신뢰는 결국 회의주의로 바뀐다


그러나 과학혁명과 흄의 철학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는 없다. 그의 출발점은 과학적 법칙에 대한 신념이었고, 그의 결론은 과학적 법칙에 대한 전면적 회의라고 요약되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적 법칙이 미리 전제하는 인과율이야말로 흄이 관심을 기울인 주제이고, 또 그것에 대해 논박한 것이야말로 흄의 독창성이 빛나는 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흄이 공격한 것은 자연과학적 법칙이 아니라 거기에 부여하는 우리의 신념이었다. 그는 어떤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필연적이고 선험적인 것으로 묶어줄 어떠한 근거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17세기가 바야흐로 시대적 발견으로 자신만만해할 때, 흄은 이 모든 발견과 법칙을 받치고 있던 인식론적 토대를 여지없이 부순 것이다. 칸트가 자신의 독단의 잠이 흄에 의해 깨워졌다고 하면서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과학 이성을 굳센 기초 위에 놓으려 한 것은, 이처럼 흄이 인과율의 필연적인 연결을 분쇄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모든 형이상학적 독단에 대한 혐오, 종교적 권위에 대한 의심, 지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기보다 그 한계를 설정하는 데 기울인 관심, 상대주의적 윤리학의 옹호 등에서 흄은 계몽주의의 이념을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한 사람의 선도적 계몽 철학자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철학이 난해한 철학과 형이상학적 허튼 소리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한다.

 

5. 비판적 고찰

 

서양 근대철학은 크게 보면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합리론과 로크, 버클리, 흄으로 이어지는 경험론으로 나눌 수 있다. 데카르트와 흄의 철학은 모두 회의에서 시작했지만 결론은 다르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몇 개의 자명한 진리를 도출하여 지식을 얻어 나간다. 그는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지식이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흄은 우리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합리적 추론이라기보다는 자연적 반응으로 이해한다. 거기에 필연성 같은 것은 없다. 결론적으로 절대적인 진리는 인식 불가능 하다는 회의주의적 입장이다. 후대의 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준 이 두 철학자의 입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여기서는 두 사람의 철학을 두 가지의 주제로 비교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명제는 과연 맞는 말일까?

 

데카르트는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석판명하게 떠오르는 것에서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 아무리 의심하고 의심해도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이에 대해 문법의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생각한다고 말하려면 생각한다라는 말의 주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생각한다의 주어인 는 존재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거기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사를 사용하려면 주어가 있어야 한다는 문법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결코 자명하지 않다. 오히려 니체는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원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원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 무엇은 권력의지를 말한다.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고 있다. 무아(無我), 무심(無心)을 이야기 하지만 역설적으로 마음을 비우자는 생각은 하고 있다. 다만 그 생각이 정말로 나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다른 무언가에 의해 나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려고 해서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것들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내가 원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도 기존에 나에게 지각되어 내 머리 속 어딘가에 저장되었다가 나타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언가 재료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생각의 기원은 우리가 지각하거나 지각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며


결국 그 지각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나의 존재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각한다는 사실이 나의 존재를 보증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데카르트가 그토록 확신했던 제 1 원칙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여기에서 출발한 그의 모든 이론은 시작부터 부정되며 빛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영국의 경험론자 흄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2) 자아의 존재


흄은 인간이 합리적이란 근대적인 인간의 본질에 문제를 삼았으며, 따라서 그는 이성의 활동을 자신의 주장에서 지극히 제한시킨다. 그는 인간의 모든 이성 활동은 지각 활동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들었을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여러 이성의 판단들은 이전에 경험해봤던 것들의 사고이다. 눈이 먼 장님은 일전에 하얀색을 본 적이 없다면 하얀색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내 곧 흄은 지각수용이 없는 이성의 활동은 존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데카르트는 모든 활동의 원천을 이성으로 규정한 반면, 흄은 모든 활동의 원천을 지각, 경험으로 보았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자아를 살펴본다. 관념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내 자아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관념이 정말로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관념이 생기지 않는다. 외부에 무언가 있을 때만 관념이 떠오른다. 가령 23482+11457이라는 계산도 그 계산이 있어야만 우리가 지각하여 34939라는 관념을 가질 수 있다


()에서는 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관념의 출발은 외부의 무언가이며 그것을 지각할 때만 관념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자아는 지각의 다발에 불과하다는 흄의 주장은 유효하다.


데카르트는 신 대신에 자아를 우주의 중심에 가져다 놓고, 이것을 기원으로 하여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을 유출시킨다. 그러나 외부의 무언가가 없으면 지각할 수 없으며 그 지각이 모인 다발이 자아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자아는 외부의 무언가에 종속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장된 실체에 대한 관념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관념은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온다. 데카르트는 자아를 모든 인식의 출처로 정의했지만 자아 자체가 그러한 주체적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자아가 흄의 주장처럼 지각의 다발이 아니라 독립된 존재로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외부에 종속된 존재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자아는 우주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이처럼 데카르트의 주장은 흄에 의해 설득력을 잃게 된다.

 

 

 

<참고문헌>

 

조중걸, 열정적 고전 읽기, 프로네시스, 2006

서양근대철학회, 서양근대철학의 열가지 쟁점, 창비, 2006

 

2012년 12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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