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

 

 

<목 차>

 

1. 개인과 사회의 관계

 

2. 마키아벨리 현실의 직시

 

3. 홉스 사회계약이론의 도입

 

4. 로크 절대권력의 부정

 

5. 루소 순진무구한 자연상태와 선악이 교차하는 사회

 

6. 칸트 이성적 개인과 도덕의 개선으로서 시민사회

 

7. 헤겔 사회계약론 비판과 자유실현으로서 인륜적 국가

 

8. 원자적 개인과 공동체적 개인

 

 

 

 

 

1. 개인과 사회의 관계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살아왔다. 이것은 서양이든 동양이든 다르지 않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순자는 사람이란 무리를 이루어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며, 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원활히 살아가는 데에 사람의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사람은 여럿이 화합할 수 있다는 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사회를 떠나서는 사람이란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철학자들은 사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더 나아가 사회가 개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탐구했다. 그리고 사회의 성립근거는 무엇이며 사회는 개인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고, 또 개인은 이런 사회의 요구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등에 대한 탐구는 중요한 철학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철학자들은 개인과 사회의 문제들에 대하여 다양한 해답들을 제시해왔다. 유럽에서는 종교적 권위와 이에 근거를 둔 권력과 제도, 질서가 점차 영향력을 상실한 근대로 접어들면서 철학자들은 더 이상 신의 권위나 종교적 교리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개인과 사회,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여기에서는 마키아 벨리에서 헤겔에 이르는 근대철학자들의 이론을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본다.

 

2. 마키아 벨리 현실의 직시

 

마키아 벨리는 군주론을 쓴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모든 권모술수와 교활한 방법들이 통치를 위해서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을 주장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는 군주론에서 위대한 군주와 강한 군대, 풍부한 재정이 국가를 번영하게 하는 것이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군주는 어떠한 수단을 취하더라도 허용되어야 하며, 국가의 행동에는 종교 및 도덕의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종교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정치적 현실을 직시할 줄 알고 현실적 국가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유능하고 강력한 통치자 또는 입법자가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당시 이탈리아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즉 종교적 권위의 상징인 교황이 이탈리아를 통일할 정도의 힘을 지니지는 못했어도, 다른 통치자가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것을 방해할 만한 힘은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탈리아는 통일국가가 될 수 없었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본성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공격적이고 탐욕스럽다. 따라서 인간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어떤 법률이나 외부적 강제력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면 항상 무정부상태와 같은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마키아벨리는 바로 이 때문에 국가가 필요하며 국가의 성립근거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현실적인 욕구와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일 뿐 국가의 구성에는 다른 어떤 종교적 근거나 도덕적 당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재산과 생명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임무를 지니며 이 임무를 완수할 경우에만 그 존재가 정당화 된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마키아 벨리가 가정하는 것은 국가에서는 통치자 또는 입법자가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성공적인 국가는 한 사람에 의해서 통치되어야 하며 오직 그만이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통치자는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국가의 기본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만능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마키아 켈리의 주장은 뒤에 등장한 홉스의 정치철학을 예견하는 많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체계적인 사상을 제시하지는 못 했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를 바라보는 현실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3. 홉스 사회계약이론의 도입


홉스는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성악설을 기반으로 인간들은 자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한다고 보았다. 자연 상태에는 규범, 윤리, , 질서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개인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 상태를 불안하다고 보았다


감각적 경험의 욕구도에 따라서 개인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하여 계약을 맺어서 사회를 구성한다. 여기에서 규범, 도덕, 윤리가 생겨났다. 또한 홉스는 왕을 성경에 나오는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왜냐하면 왕에 의한 통치는 부당하지만 계약상태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홉스가 위대한 점은 첫 째로 개인주의를 확립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왕정의 지지자였지만 왕권신수설은 부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왕권은 신이 내려준 것이 아니라 인민의 동의로부터 나온다. 개인의 안전을 조건으로 왕과 인민이 서로 계약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왕은 개인의 안전을 해쳐서는 안 된다. 왕조국가에서는 현명한 왕이 죽고 난 뒤에 어떤 왕이 즉위할지 몰라서 인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홉스의 사상으로 누가 왕이 되든 상관없이 개인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중세 기독교가 모든 나라에 공통적 윤리규범으로 작용했었지만, 홉스 이후에는 계약조건에 따라 나라별로 다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윤리규범이 선천적, 절대적,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며, 중세 기독교적 윤리 규범을 깨부순 근대적 사상이었다.

 

4. 로크 절대 권력의 부정

 

로크는 사회가 구성되기 이전의 자연 상태는 결코 개인의 무한한 욕망과 이익이 대립되는 투쟁 상태가 아니라 평화와 선의, 상호원조와 원활한 종족보존이 유지되는 상태라고 가정한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 상태는 이미 자연법과 자연권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며, 각 개인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에 최선을 다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소유와 권리에 대한 존중이 자연법상의 의무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이다. 자연 상태는 이미 자연법으로부터 비롯된 도덕적인 권리와 의무가 어떤 구체적인 법률보다도 선행하여 확고하게 자리 잡은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 상태에서 일종의 불편이 발견되기 때문에 인간들은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의 불편이란 각자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자신의 주장에 따라 행위하여 마찰이나 시비가 발생할 경우 이를 공정하게 판정할 수 있는 재판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공동체를 구성하기로 결정한 개인들은 일단 자신의 권리 가운데 일부를 위임한다. 이렇게 로크가 조건적인 권리의 위임을 강조하는 데에는 어떤 형태의 절대 권력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면적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즉 조건적으로 권리를 위임 받고,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에만 성립하게 되는 정부는 결코 절대 권력을 지닐 수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일종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서 세워진 정부가 개인의 생명과 재산 전체를 위협하거나 빼앗을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소유하는 일은 결코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로크는 누군가가 절대 권력의 정부를 인정하고 이 정부에 자신의 모든 권리를 기꺼이 양도하더라도 이는 양도할 수 없는 것을 임의로 양도한 것이기 때문에 이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하여 로크는 절대 권력을 부정하며 개인에 의한 정부의 견제와 혁명을 충분히 정당화하는, 더욱 근대적인 개인과 정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확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5. 루소 순진무구한 자연 상태와 선악이 교차하는 사회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의 이행을 파악하기 위해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유용하지만 동시에 가장 뒤떨어져 있는 것이 인간에 대한 지식이다. 인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화 되고 문명화된 단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 상태 본연의 모습은 상실되었거나 변형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사회문화에 물들지 않은 원초적 자연인 상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문명인이 인간 본래의 모습인 자연인과 자연상태를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루소는 자연 상태와 그것에 대한 진리는 역사적 진리가 아니라 가설적·조건적 추리임을 인정한다.

 

홉스의 자연인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일종의 건장한 어린아이와 같다. 루소의 자연인도 어린아이로 비유되지만, 홉스처럼 어린아이의 탈을 쓴 어른이 아니라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그 자체이다. 순진무구한 자연인은 광대한 산림 가운데서 일정한 거처도 없고, 타인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서로 얼굴도 모르고, 대화할 일도 없이 동물처럼 평화롭게 지낸다. 아무도 자연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며 소유권에 대한 개념도 없다


자연인은 서로 부딪힐 기회도 많지 않지만, 부딪쳐도 이해관계의 대립이 부각되지 않는다. 혹시라도 누군가 자기 구역을 침범하더라도 다른 구역으로 옮겨 가면 그만이다. 여기에는 불평등뿐만 아니라 악도, 악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선악개념도, 도덕적 관계도,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넓은 자연 공간에서 그저 자기보존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자기애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락한 자연인의 삶에 비한다면, 불평등과 다양한 악에 시달리는 사회인에게 자연 상태는 잃어버린 낙원과 같다.

 

그런데 왜 인간은 평등한 자연 상태에서 불평등한 사회 상태로 이행하는가? 살다보면 자기보존과 행복에 방해되는 요소가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인간의 정신에 관계에 대한 자각이 생긴다. 사물을 파악하는 최소단위에 해당되는 비교개념에 따라 표현되는 관계는 자연인의 마음에 반성무의식적 신중함을 낳는다. 반성하는 가운데 지식이 생성되고 증가하며, 이로 인해 인간은 동물에 대한 우월성을 느끼게 된다. 우월성은 존재의 서열개념과 인간 자신에 대한 자존심을 낳는다


자존심은 관계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작동하는 이성의 산물이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면 개인들은 타인에게서 경험하진 않았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이면 자신과 같은 행동·사고방식·감정 등을 지닌다는 일치감을 느끼게 된다. 일치감과 공통성에 대한 발견은 인간에게 추론능력을 주고, 목적 실현에 적합한 규칙을 낳는다. 그래서 자기보존과 자신의 행복추구는 타인보존 및 타인의 행복추구이며 공동체 전체의 보존 및 행복과 관계하게 된다.


자연인에게 사회라는 개념은 생소하지만 사회 상태로 이행하려면 최소한 사회의 목적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사회의 목적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가? 그것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왜 자연인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가? 이를 위해 루소는 자존심과 예의범절을 낳는 이성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감성을 제시한다


루소의 자연인은 자기중심적이긴 해도, 타인을 만났을 때 그를 해치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에게서 입을지 모르는 피해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데 더 신경을 쓴다. 고통을 싫어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감정은 타인이 고통받을 때도 그를 동정하는 자애심(연민의 감정)’으로 발휘된다. 이것은 이성이나 자존심보다 선행하는 원리이며, 자연법의 모든 규칙을 도출하는 감성적 원동력이다. 자애심은 반성과 이성보다 더 근원적인 힘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인이 타인과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로 이행하는 원동력은 자애심과 자존심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으로 사유재산이 필요하다. 사유재산은 소유를 확인하기 위한 정의의 규칙들을 요구하며, 소유권은 자연권과는 다른 종류의 새로운 권리이다. 사유재산의 등장으로 선악개념이 생기고, 선으로의 진보와 더불어 악 내지 불평등도 심화된다. 그러므로 사유재산은 시민사회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범죄와 전쟁과 살인을 야기하는 악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사회화는 인류의 진보와 타락의 동시적 발생이며 선과 악의 동시적 심화과정이다


인간사회를 살펴보면 강자의 폭력과 약자의 억압이 만연한다는 사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으며, 사회 속의 개인은 이미 악에 물들어 있어서 잃어버린 악원으로 회귀하기 어렵다. 그래서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구호에 담겨 있는 자연상태로의 회귀욕구는 선을 극대화하여 자연상태에 근접한 모습을 창출해내는 방식, 즉 문명의 극단적 진보를 활요하는 방식말고는 없다. 이를 위해 루소는 정당한 권리, 권위, 의무의 기초가 되는 합의와 약속으로서 사회계약을 최대한 활용한다.

 

루소의 관점에서 사회계약의 근본정신과 의의를 인정하는 개인은 자기의 모든 권리와 함께 자신을 공동체 전체에 양도하게 된다. 모든 권리를 공동체에 양도하는 것은 억압과 불평등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처럼 타인들도 똑같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공동체에 양도하기 때문에, 자기를 공동체에 양도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자기를 양도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기를 사회에 전적으로 양도하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며, 자유를 양도하는 것은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권리 양도자는 인간 전체와 결합하며 하나의 정신적이고 집합적인 단체가 된다


이 집합적 단체의 의지는 사회구성원의 공통의지이며, 공통의지는 일반의지이다. 개인들의 의지와 목적을 일반의지로 실현하려고 할 때, 루소는 일반의지의 담지자를 수동적으로는 국가로, 능동적으로는 주권자로, 정치체제로는 공화국으로 일컫는다. 이러한 공화국의 법과 정의는 신으로부터 나온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성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간에 서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인정의 근본적 원리가 바로 약속과 사회계약이다. 사회계약의 자의성을 고려한다면 그 결과물인 공화국은 절대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6. 칸트 이성적 개인과 도덕의 개선으로서 시민사회

 

홉스, 로크, 루소 같은 사회계약론자는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최종점을 국가로 간주한다. 이들에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해명하는 결정체는 국가와 법이다. 그러나 칸트는 국내법의 차원을 넘어서서 국가 간의 관계로까지 지평을 확장하고 세계사적 전망에 기초하여 국제법과 세계시민법을 다루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국가뿐만 아니라 역사적 차원에서의 이해를 요구한다


칸트는 인간행위를 보편적 체계로 정립하기 위해 인류의 출발점을 상정하고 이로부터 세계사를 전개할 때 발생론적 설명의 단초가 엿보이며, 이 속에서 개인과 사회에 대한 관계를 총체적 관점에서 논할 수 있다. 칸트는 개별대상의 합목적성을 주어진 대상들의 총괄 개념인 자연 전체에 확장시켜 적용하며, 더 나아가 비자연적 역사에까지 적용한다


그런 연유에서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세계사적 운동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합목적성과 자연의 법칙이 사회와 역사인식의 모델이 된다. 칸트는 역사의 전개 속에 투영된 합목적성을 자연의 계획, 자연의 의도라고 일컫는다.

 

칸트의 자연인은 말과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이성능력을 지닌다. 개인과 사회의 목적을 자기보존과 행복으로 간주하는 루소와 달리 칸트에게 목적은 선의 실현이고 선의지에 기초한 도덕성 개선에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이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때 도덕성의 개선은 인간본성인 자연적 소질의 계발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한 개인에 의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유적과정으로서 세계사적 전개를 필요로 한다. 자연의 계획의 시초에 서 있는 인간은 동물적 본능에 기초하여 이성을 발생론적으로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인간의 사회화가 드러나고 사회성의 근본적 원리가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최초의 본능은 신의 음성에 따라 음식물 섭취 여부를 판별하는 후각작용이다. 이 최초의 본능에 후각과 다른 시각적 감관이 작동하면서 음식물을 기존의 섭취물과 비교하는 이성이 개입되며, 비교에 의해 축적된 지식은 본능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이성은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서 동물적인 자연적 충동 이외의 인위적 욕망반자연적 경향들을 만들어 낸다.

 

이성의 두 번째 진보는 섭취본능 다음으로 두드러지는 성적 본능과 관련이 있다. 성욕은 동물과 큰 차이 없이 일시적이고 주기적인 충동으로 나타나지만, 감관대상이 자기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상상력이 증폭된다. 여기서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멸시하면서도 그 마음을 은폐하는 몸가짐, 즉 멸시에 대한 거리는 예의를 발생시킨다. 예의는 모든 진정한 사회성의 기본토대이며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만드는 출발점이다


이성의 세 번째 진보는 욕구대상과 직접 결합되어 있던 상태로부터 좀더 진행된 것이며,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의 목적을 위해 준비하는 미래에 대한 의식적 기대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자신을 자연의 본래 목적으로 파악하는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며 존재물 전체는 이성적 존재인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목적론적 발상을 심화시킨다.

 

칸트에게 사회는 인간본성의 근원적 소질로부터 자유가 최초로 전개되는공간이다. 이 최초의 변화는 좋은 것으로의 진보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성이 미약하기 때문에 동물적 성질과 그 위력에 뒤섞이면서도 악도 생겨난다. 칸트는 악이 이익이고 선한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이기심과 반사회적 경향성 때문에 생기는 투쟁은 반사회적 악이지만, 오히려 사회성을 도출해내는 반사회적 사회성이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악은 자연적 감정으로 뭉친 인간 사회를 도덕적 전체로 바꾸는 장치인 것이다. 반사회적 사회성의 사회적 발현물은 궁극적으로 이다


그러므로 사회성의 근본적 원리는 법과 법률체계로서 제도가 된다. 이렇게 형성된 보편적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칸트는 시민사회라 부른다. 칸트는 시민사회와 그것의 전 세계적 확장으로서 국제연합 및 세계시민 상태를 자연의 계획으로 설정하지만, 시민사회의 발생론적 전개나 경험적 실현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시민사회와 세계시민은 경험에서 도출되는 경험적 원리이기보다는 선험적 원리로 제시된 이념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실현 불가능 하다.

 

칸트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신의 섭리를 비판하는 근대인답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자연의 계획을 통해 논증한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선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시작하며, 선을 실현하고 도덕을 개선하기 위해 반사회적 사회성이 요구되고, 처음부터 굽은 상태로 태어나는 인간본성 때문에 보편적 세계시민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점은 칸트가 변신론과 이성적 주체 사이를 오가면서 신을 개인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간접적 동인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7. 헤겔 사회계약론 비판과 자유실현으로서 인륜적 국가

 

헤겔은 개인과 사회 간에는 통일된 지평이 있으며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공동체적 존재로 태어난다고 본다. 헤겔의 이런 차원을 드러내는 개념이 바로 인륜성이다. 헤겔은 인간은 자유롭다’, ‘인간은 인격을 지닌다와 같은 주장을 사회계약론자처럼 당연하게 전제하지 않는다. 헤겔에게 자유와 인격의 의미는 인륜적 공동체의 삶 속에서 법적·도덕적 장치가 형성되고 작동하는 가운데서 분명해지고, 외적 장치를 통해 실천적으로 드러날 때 자유와 인격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유권과 인격권도 확립된다. 그런 과정이 바로 사회계약론자에게서 당연하게 전제되는 권리인 자유와 인격 자체의 정당성이 증명되는 과정이다.

 

헤겔에 따르면 권리도 계약도 인간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실현된다. 그리고 그 상호작용의 총체적 지평으로서 공동체적 기반이 인륜성이다. 인륜성은 국가의 주요 지반이 되는 추상법과 도덕성의 통일이며, 법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의 통일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특수의지와 공동체의 보편의지가 법과 선을 매개로 통일된다. 헤겔은 이런 의미의 인륜성을 가족·시민사회·국가의 논리적 전개를 통해 정립하고 궁극적으로 인륜성을 국가법과 제도에 담겨 있는 국가의 정신이라고 본다


그래서 헤겔에게 훌륭한 개인, 훌륭한 시민은 좋은 법률을 가진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때 법의 출발점은 각 개인의 자유롭고 특수한 의지이며 그 정점은 개인의 특수의지와 공동체의 보편의지가 통일된 지접이다. 법의 체계는 보편의지로 실현되는 자유이념에 대한 모든 규정들의 체계이다. 그래서 자유는 법의 실체와 규정이며, 국가는 자유가 실현된 왕국이다. 국가 안에서 자유의 전개와 실현을 통해 정립되는 자유이념의 진리가 인륜성이다.

 

헤겔은 가족과 시민사회가 이미 국가 속에 있지만 국가는 단순히 전제된 것이라기보다는 가족과 시민사회의 한계를 지양하면서 그 계기들의 논증을 통해서 도출되고 증명된다는 점이다. 개인에게 국가는 전제이면서 결과이므로, 국가와 국가체제를 임의적으로 만드는 사회계약론자와 달리, 헤겔의 국가는 전제와 증명을 통해서 필연성과 보편성이 정립된 이성적인 것이다. 그래서 헤겔은 국가와 국가정체를 신적인 것내지 항구적인 것이라 일컫기도 한다


권리와 의무가 분리되지 않는 헤겔의 국가도 사회계약론자처럼 삼권분립에 기초한다. 헤겔은 삼권을 입법권(헌법), 통치권(중간계층으로서 공직자), 군주권으로 분할하며, 군주권은 입헌군주제를 의미한다. 군주를 최정점에 놓는다 해도, 이것이 군주국으로의 후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군주는 이름만 군주이지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최고 정치가로서 일종의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

 

한편 칸트는 시민사회를 공화국 또는 국가라고 하는데 반해 헤겔은 시민사회와 국가를 구분한다. 헤겔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개인과 국가의 관계로 확장되며 역사철학의 문맥에서 보면 개인과 세계사의 관계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위해서는 정치적 국가와 법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때 정치적인 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헤겔 이후의 철학자들이 헤겔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상대주의적 입장을 전개시키는 요인이 된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었다면그 결과물에 대한 합리적 파악도 가능하며, 그것을 다시 변화시키고 개혁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부르주아 사회이론을 비판하는 맑스의 견해도, 헤겔적 국가공동체의 필연성을 거부하는 상대주의적 국가관과 역사관도 의미를 지니게 된다.

 

8. 원자적 개인과 공동체적 개인

 

개인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원하는 일을 스스로 자유롭게 수행한다. 그러나 자신과 상관 없어 보이는 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가진다면 국가의 운명은 이미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고 루소는 말했다. 무관심은 공동체에 대해 영향력을 포기하는 것이며, 결국 공동체와 상호작용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포기이고 인격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의 공간이 어떠하든지 간에 개인은 이미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전체 없는 부분이 없듯이, 사회 없는 개인은 불가능 하다. 그래서 사회구성원의 존재목적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 및 공동체의 생존이다. 개인은 홀로 원자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 태어나므로 개인의 목적은 공동체의 목적에 의해 좌우된다.

 

여기에서 인간이 근본적으로사회적 동물이고 공동체적 개인이라고 주장할 정당성이 있는가? 근대 사회계약론자들은 개인의 독자성과 자유에 주목하면서 개인은 공동체적 개인이기보다는 사회 이전의 원자적 개인이며, 그의 원초적 상황은 자연 상태이다. 그래서 원자적 개인이 어떻게 사회를 형성하며, 형성된 사회는 보편적 사회인가 등의 문제를 제시한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도출하기 위해 사회계약론자는 무엇보다도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특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으로 간주하며 자기이익을 관철시키는 이기성에 주목한다.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고 권리를 확립하는 자유를 지니며, 타인도 그러하다. 그러나 욕구와 의지에는 차이가 있으며, 차이는 개인의 욕구를 특수한 것으로 전락시킨다


그에 반해 사회는 모든 개인에게 관철되는 보편적 의지와 보편적 목적을 지향한다. 개인의 특수성과 사회의 보편성의 매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가늠하는 잣대이지만, 양자는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2012년 12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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