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일 작성


『올림픽의 몸값』서평



 『올림픽의 몸값』은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 당시 일본의 사회경제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올림픽을 인질로 삼고 국가로부터 몸값을 받아내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씁쓸하고 불편한 사실들을 ‘시마자키 구니오’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시마자키 구니오는 일본 도호쿠 지방 아키타현의 시골마을 출신으로, 뛰어난 머리로 도쿄대 경제학부에 입학한 수재이다. 


그가 도쿄에 처음 와서 놀란 것은 도쿄와 아키타의 엄청난 경제력 차이였다. 자신들이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느끼게 된 것이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는 그 당시 많은 도쿄대생이 참여하던 학생운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형의 죽음으로 인해 도쿄 올림픽 공사현장을 경험하게 되면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의문이 증폭된다. 


 그의 고향인 아키타는 그야말로 가난한 농촌 지역으로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다. 당시 일본의 농촌에서는 여자들은 20살 무렵이면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평생 동안 시집살이를 하며 농사만 짓다가 생을 마감한다. 농사일은 너무나 고되고 소득은 말할 수 없이 적었다.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얻을 수 있는 수입은 한정적이었고 여행 한 번 제대로 가기 힘든 형편이었다. 또한 인신매매의 형태로 얼굴이 반반하면 게이샤로 팔려가고, 별 볼일 없는 얼굴이면 숯가마 터에 식모로 팔려가기도 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남자들은 식구들을 위해 돈을 벌려고 농촌을 떠나 홋카이도의 탄광이나 도쿄의 공사 현장에 막노동 인부로 떠났다. 가족들 얼굴은 거의 보지도 못 하는 생활이었고, 그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받은 봉급은 대부분 고향집으로 보냈다. 그들의 근로환경은 열악했다. 


허름한 합숙소에서 잠을 자고, 휴식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위에서 일 하라고 하면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해야 했고, 심지어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에 무려 16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 막노동 인부들은 이런 고되고 힘든 상황을 잊기 위해 필로폰을 맞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런 암울하고 어처구니없는 현실과 더불어 마르크스에 심취해 있던 시마자키 구니오는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동을 하게 된다. 그는 육체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는 믿음을 가졌는데, 이는 1960년대 일본 학생 운동의 이념과 맞닿아 있었다. 


1960년대의 일본은 학생운동이 가장 격렬한 나라 중 하나였다. 일본은 1960년대 초반 미일 상호 안보조약에서 일본의 주권 침해, 평화헌법 위배 문제로 인해 안보투쟁이 전개된다. 이 시기 일본의 대학 자치기구(학생회) 연합체인 전학련은 안보투쟁의 중심이 되어 활동하게 되지만, 단순한 학생기구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전학련의 구성원 대부분이 구체적인 목표 없이 추상적이었고, 헤게모니 싸움으로 인해 내부 투쟁이 심했으며, 투쟁 방식도 피켓 시위나 수업 거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별로 효력이 없었다. 이는 소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무라타가 학생 운동을 철없는 어린아이 소꿉장난으로 취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마자키가 이들과 연대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아마 작가는 그 당시 학생운동을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처럼 시마자키 구니오는 유산계급을 경멸하고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 하지만 재밌는 건 백인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미군 주둔군 장교의 가족 숙소로 사용하던 워싱턴하이츠를 보며 그는 ‘전국이 가난에 시달리던 전후의 피폐함 속에서도 미국인은 도쿄 한복판에서 본국에서와 똑같이 우아한 삶을 살았다’고 느낀다. 백인은 유색인종의 번영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장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백인의 본심은 여전히 패권주의라 느꼈다. 


그리고 시마자키는 한 호텔 앞을 지나가다 서양인처럼 차리고 다니는 일본인을 보며 백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눈이 벌게졌다며 경멸한다. 이러한 새로운 유산계급의 탄생은 노동자 계급을 그대로 존속시키려는 꿍꿍이라 여겼다. 그에게 있어 백인은 하나의 유산계급이었던 것 같다. 백인이라고 해서 다 유산계급인 것은 아니다. 


그들 나라와 사회에도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이 나뉘어져 있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시마자키는 일본의, 넓게 잡는다면 아시아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해방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은 소설 중간에 그가 올림픽 몸값을 받아낸 뒤 조총련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북한으로 도주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다. 그는 현실 사회주의를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마자키가 백인에 대해 배타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일본인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소설 속에서 패전(敗戰)이라는 표현 대신 종전(終戰)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패전 이후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는 표현이다. 일본은 패전이 아닌 종전, 침략이 아닌 자위, 일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위해서,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히로히토 천황의 ‘종전초서’를 살펴보면 `침략 전쟁`, `패전` 등의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천황은 전쟁 책임이 없고, 그들이 일으킨 전쟁은 서양 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방어 전쟁이었다. 또한 이대로 전쟁이 지속되면 인류 평화를 해치게 되니 평화를 사랑하는 천황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일본인들은 도쿄 대공습,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 등을 들어, 일본 또한 피해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좌익과 우익을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시마자키의 생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전후의 일본은 빈부격차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다. 전후의 재벌 해체와 농지개혁에 의해 지배층은 그 세력이 약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재벌이 일족에서 기업으로 옮겨갔을 뿐이고 민중에게는 그 혜택이 내려오지 않았다. 가난한 민중은 계속 가난한 상태였다. 계층적 빈부격차 뿐만 아니라 지역적 빈부격차도 심했다. 이는 작품 속에서 아키타의 한 아주머니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초현대 도시 도쿄에 와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키타에서는 볼 수 없는 초고층 건물과 도쿄타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져서 관광을 한다. 


도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이후 일본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마치 40년대의 전시 총동원 체제를 방불케 하는 작전을 펼쳤다. 이에 따라 도쿄에는 사회기반시설, 체육관, 고층 건물 등이 들어섰고, 모노레일, 신칸센 같은 교통수단도 개통되었다. 1945년 패전 이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낸 결과물을 전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 일본은 모든 노력을 다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대한 투자는 배제 되었다. 올림픽은 도쿄에서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쿄에 있는 노숙자, 부랑자, 야쿠자 등 외국인에게 안 좋은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안 보이는 곳으로 옮기고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을 다 정리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토를 달지 않았다. 상류층부터 최하층 막노동 일꾼과 농사꾼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일본의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기원했다. 이런 열망은 이념도 가리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학생 운동을 하는 좌파 대학생들도 올림픽을 보고 싶어 하며, 올림픽에 방해되는 행동을 했다가는 향후 100년간 좌파 운동은 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모든 일본인들이 간절히 바라는 올림픽을 망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좌파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야쿠자들도 정부에 협력했다. 일본 정부는 야쿠자들에게 올림픽 기간 동안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자중할 것을 요청했고, 그에 화답하여 야쿠자들은 올림픽 기간 동안 도쿄를 떠나 있기로 하였다. 올림픽 개최를 구실로 도쿄는 온갖 특권들을 독차지했지만 지방에서는 별 다른 반발도 없었다. 올림픽 공사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갔지만 언론에는 제대로 보도되지도 않았고 국민들은 알지도 못 했다. 노동자들은 단지 올림픽을 위한 인간 희생물로 국가에 바쳐졌다. 시마자키는 이런 현실에 분노했다.


 어째서 일본인들은 이렇게 한 마음으로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했던 것일까.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은 전쟁의 상흔에서 점차 벗어나고 엄청난 경제성장도 이룩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은 다시금 국제사회에 진출하고 그들의 재기를 알렸다. 올림픽 개최로 일본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시마자키는 이를 서구적 보편사상에의 순진한 영합이라고 평가절하 한다. 


그는 서구 문명은 전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서구사회에서 구조화된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올림픽을 위해 급조된 건축물들에는 서구적인 도시로 거짓되게 꾸미려고 안달하는 도쿄의 왜곡됨이 드러나 있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올림픽은 민중에게 헛된 꿈을 부여하여 현실을 잊게 만드는 지배층의 상투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지배층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군사 정권이 3S 정책과 함께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통해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고 정권을 유지하려 했었다. 이처럼 일본 정부도 올림픽을 통해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불만을 잠재우며 외부적으로는 일본의 힘을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시마자키는 이런 올림픽은 일본 민중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올림픽 경기장을 폭파시키겠다고 정부를 협박하여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싶으면 8000만엔의 몸값을 내라고 요구한다. 이는 상징적인 것으로, 도쿄와 유산계급만의 일본이 돼가는 현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비록 시마자키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를 통해 1964년의 일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 뒤에 가려진 이면과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보며 과연 그 시절은 영광의 역사이기만 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경제는 계속 성장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볼 때 50년이 지난 2014년에도 시마자키 구니오의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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